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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Sep 20. 2022

서로 '결'이 다른 사람



나랑은 뭐랄까.. 결이 다른 사람이야



 누군가를 만난 이후에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종종 하게 되는 생각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인지를 보게 됩니다. 결이 같다는 것은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 내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도 받아들여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이 같은 사람과 있을 때는 굳이 나를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도 용인될 거라는 믿음도 있고요. 일단 첫인상에서 한 번, 대화를 해보며 한 번 더,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은 바로 알아볼 수 있지요. 가끔 신기하게 마주치자마자 단박에 알아채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고,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 사람도 느끼고 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질 때, 나와 같은 결의 사람이구나 생각합니다. 반대로 어딘가 왠지 모를 불편한 느낌이 든다면 나와는 결이 다른 것입니다. 직장에서, 조직에서, 어떤 집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행동할 수 있는 것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적당히 페르소나를 쓰거나, 그게 아니라면 굳이 만나지 않는 거죠. 저는 주로 사회생활에서 페르소나를 쓰며 대응했던 것 같습니다.


 결이 너무 다른 사람일 경우에는 관계를 계속 이어가기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밀어내게 되지요.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결이 다른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맞지 않는 거죠. 지금까지 제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주로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느끼는 건, 관계에서 중요한 건 결국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느냐'가 아닌, '얼마나 나와 맞는 결의 사람인가'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인연도 비슷한 결의 사람과는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게 되는 반면, 십 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도 결이 다른 사람은 결국 떠나가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도 이를 여실히 느꼈던 일이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우연히 중학교 동창 A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A와는 재학 당시에는 소문난 단짝으로 늘 붙어 다니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물론, 학원에서도, 자주 서로 집을 오고 가서 부모님들 얼굴도 다 알만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죠. 하지만 졸업 후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연락은 서서히 끊겼습니다. 건너 건너 소식을 듣긴 했지만 먼저 연락하기 멋쩍기도 하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 추억만 떠올리곤 했던 친구였죠. 그동안 잊고 지내다가 막상 얼굴을 직접 마주하니 너무 반가워서 왜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서로 반가움에 호들갑을 떨며, 하나도 안 변했어, 어떻게 지냈느냐는 말을 연발하다가 각자 동행이 있어서 일단 연락처만 주고받고 다음 만남을 기약한 후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A와 다시 만남을 가졌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에 대한 물음과 그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핀트가 묘하게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화제에 대한 시각이 놀라울 정도로 달랐고, 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또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사이에 서로 많이 달라진 '결'을 느꼈습니다. 학창 시절엔 그런 생각 없이 웃으며 놀았었는데, 지금은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무 잘라지듯이 툭툭 끊어지는 대화 흐름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느 정도 공감이 되어야 맞장구를 칠 텐데, A가 하는 이야기에 아무리 애써도 공감이 되지 않았고(아마 A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서로 어색한 웃음만 이어지는 상황에 애꿎은 시계만 틈틈이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계속 과거 추억 잡기만 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서로 급하게 자리를 마무리 짓고 일어났습니다. 의례적인 작별 인사로 '다음에 시간 되면 또 보자.' 하며 헤어졌지만, A도 저도 알았습니다. 그 '다음'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죠.




 생각해보니, 예전 어느 모임에서도 이와 비슷한 마음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모임에서 유일한 동갑이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야기를 할수록 '나랑은 결이 다르구나.'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동갑이니 친하게 지내자고 했지만 어영부영 애매하게 관계를 지속하다가, 그 모임이 흐지부지 끝남과 동시에 연락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결이 다른 사람과의 특징은 장시간의 대화가 어렵다는 겁니다. 같이 있는 동안 불편하고 괜히 어색한 느낌이 들고요. 서로 추구하는 가치나 어떤 공통의 현상을 보고 느끼는 생각의 차이가 크다 보니, 이야기를 할수록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꾸 피상적인 대화만 나누게 됩니다. 호불호가 딱히 나오기 힘든 날씨 얘기나 가십거리 등 말이죠. 

 


 사람의 '결'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각자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취향이 생기고, 또 삶의 패턴이 달라지면서 고유의 '결'을 갖게 되지요. 생각해보면 어려서는 그런 구분 없이 다 같이 어울려 놀곤 했었지만, 사회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면 나와 비슷한 무리의 사람들만 만나게 됩니다.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게 되다 보니, 더 인간관계가 좁아지지 않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관계가 더욱 깊어진다는 건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요.

 사실, 살아가며 나와 같은 결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직장에서도 그렇고, 외부 활동을 할 때도 그렇고,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마주치면, 오래 관계를 이어가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신기하게 글을 쓰면서도 느낍니다. 댓글 달아주는 분들이 여럿 계시지만 그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은 내용만 읽고도 직감적으로 알아보게 됩니다. 가끔 상담 이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도 그렇습니다. 보내주신 글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나와 같은 결의 사람이구나' 느낌이 올 때가 있지요. 그런 분들을 마주하면 마음으로 잘 되기를 응원하는 편입니다. 비단 사람의 결뿐만이 아닙니다. 책을 읽을 때도,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유독 깊숙이 몰입하게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그럴 때면 해당 작품 작가님과 같은 결인가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독자님 역시 아마도 저와 비슷한 결의 사람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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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나와 같은 결의 사람을 바로 알아보는 편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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