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식당이나 카페 등 서비스 업장에서 진상 고객이나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주변 상황을 헤아리거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들이지요. 직원을 자신의 아랫사람 대하듯하며 반말로 주문하거나 지시하는 사람, 아르바이트생에게 웃고 있지 않아서 기분 나쁘다며 고성을 지르는 사람,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말도 안 되는 사항을 요구하는 사람 등 배려와 존중을 집에 두고 온 듯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아르바이트 했을 때 기억이 나서, 이럴 때 주로 직원 감정에 이입이 되는 편인데요. 옆에서 지켜보며 대신 마음이 답답하거나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케이크를 사기 위해 지인과 동네 빵집에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주말 오후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평상시 매장에는 두 어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한 명만 있는 상태였죠. 그 직원 혼자서 캐셔 역할도 하고 케이크 픽업을 하며 중간중간 고객 문의에 응대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갓 스물이 넘어 보이던 직원은 이제 막 일을 시작했는지 서툰 모습으로 낑낑대고 있었죠. 사람이 더 북적거리기 전에 나가려고 얼른 빵을 고르고 케이크 주문을 한 이후에 계산대 앞에 섰는데요. 제 바로 앞에서 결제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손님 A와, 60대 정도로 보이는 손님 B는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A: 제 카드로 해주시라고요.
B: 아니, 내가 얘 시에미인데 그냥 이걸로 계산해.
A: 아이 참, 어머니 제가 산다고요.
언뜻 보면 계산대 앞에서 서로 사겠다고 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훈훈한 광경이었지만, 그 실갱이가 꽤 오래 이어졌고, 그 사이 계산 줄이 끝없이 길어지고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서로 카드를 못 내밀게 저지하는 혈투(?)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아르바이트생 모습을 보니, 제가 다 식은땀이 나더군요. 직원 입장에서 보통 그런 고객을 마주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 사이 길어지는 줄에 압박감은 점점 커져 가고요. 아마 연차가 있는 직원이었다면 뒷 고객님이 기다리시니 빨리 결정해달라고 재촉할법한데, 아르바이트생은 차마 말은 못 하고 A와 B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A가 포스기 너머 힘껏 내민 카드로 결제에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끝난 건가 했더니 B는 '내가 며느리한테 얻어먹어서야 되겠느냐'라고 성을 내며 계산을 취소해달라고 하더군요(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취소를 한 직원에게 이번에는 A가 왜 멋대로 취소하느냐고 짜증을 내며, 자신의 카드로 다시 결제를 해달라고 했고, 계산 전쟁은 몇 번 더 이어졌습니다. 그리 큰 금액도 아니고 가족끼리 누가 사는 게 그렇게도 중요한 일인지, 이쯤 되면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죠.
계속된 실랑이 끝에 결국 누군가의 카드로 결제가 마무리됐고, 그 와중에 고스란히 포인트 적립과 상품권 할인까지 다시 요구하는 통에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습니다. 직원이나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흔한 양해의 말이 없었음은 물론이고요. 그 사이 줄은 끝도 없이 길어져 있었고, 대기하는 사람 몇몇은 한숨을 쉬거나 투덜댔습니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A와 B는 결제를 마치고도 빵의 유통기한을 묻거나 포장을 다시 해달라는 둥 질문과 요구사항이 많았습니다(그 와중에 B는 한결같이 직원에게 반말로 얘기하더군요).
가게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 물었고, 지금 열쇠가 없는 걸 보니 누가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직원의 말에, 무슨 화장실에 열쇠가 필요하며, 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며 마지막까지 직원을 애 먹이다가 자리를 떴지요. 직원은 매뉴얼에 따라 친절하게 '감사합니다. 또 뵙겠습니다.'를 말하며 그들을 배웅했습니다.
물론 누가 결제하는지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안이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되지 않았던 게 문제였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기다리는 상황이었다면, 손이 바쁜 직원의 곤란한 모습을 캐치했다면, 적당히 빠르게 타협하는 배려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케이크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지인과 말했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은 역지사지가 안 되는 건지, 본인들이 폐를 끼치고 있다는 걸 알기는 할는지 말이죠. 그러다가 대화 중에 지인이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그냥 '인생이 많이 힘든가 보다' 생각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전에 접했던 어느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친절해야 한단다
가수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했던 말입니다.
솔직히 막무가내인 사람에게 친절하기란 어렵더라도 '당신도 고단한 일상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군요'라고 생각해보면, 받아들이기가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그들과 맞서야 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피하는 게 현명할 때가 많기 때문이죠. 부딪혀봤자 벽창호처럼 말이 통하지 않거나,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크고요. 괜히 열을 내고 다퉈 봐야, 내 정신건강에도 좋을 게 없습니다.
대신 유연하게 생각의 방향을 바꿔 보면, 마음이 좀 나아집니다. 도대체 뭐가 이 사람을 그리 뾰족하게 만든 건지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상황이 바뀌거나 그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달까요.
(가끔 직장에서나 일상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마주할 때도 이렇게 생각하면 유용합니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듭니다.
'진상을 부리거나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 역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진 못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