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어느새 여름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휴가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의 계절감을 만끽하지 못했는데요. 대신 우연히 추천받아서 읽었던 책 한 권으로 나름의 여름휴가 떠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입니다. 어느 여름날의 시골 전원 별장이 주무대로, 마치 내가 그 여름 별장에 같이 있는 것처럼 풍경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고 나니 마치 별장으로 휴가를 다녀온 듯 대리만족도 되었지요.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무라이 건축 설계 사무소'에 채용이 되며 시작됩니다. 대학 졸업 후, 이곳에서 주인공은 사회생활의 첫 발을 떼게 되는데요. 사무소의 건축가 무라이 선생님은 70대의 나이에도 정정하게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본인만의 주관이 확고한 장인입니다. 무라이 사무소는 '국립현대도서관'의 설계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경합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이 경합을 한적한 시골 여름 별장에서 준비하게 됩니다. 여름 한 철을 그곳 별장에서 지내며 경합을 준비하기도 하고, 사무소 직원들과 여러 사건들을 겪어내며 뜨거운 여름날을 보내게 되죠.
책을 읽는 내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습니다. 자연에서 주인공이 음식을 해 먹고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며 힐링이 되었듯이, 소설에서 역시,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의 소소한 일상(요리를 하거나 풍광을 즐기는 등)을 접하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디테일하고 생동감 있는 표현에,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그곳에 머무는 듯한 느낌도 들었죠. 오감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어휘들로 인해 더 생생히 느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낯선 건축 용어들이 많이 등장해서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건축 상식도 적게나마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야기 흐름상 주로 도서관 건축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져서, 꼭 건축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책과 서점, 도서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문득 제가 다녔던 도서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떠올려 보았거든요. 책을 읽으며 도서관 공간 곳곳의 숨은 의미를 알게 되자, 평소 별생각 없이 드나들던 집 근처 도서관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책은 건축에 대한 부분 외에도 한 사람의 장인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인만의 확고한 철학으로 설계에 몰두하는 무라이 선생님의 태도는, 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고요. 역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매력에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책에 인상 깊은 내용이 많았지만 그중 특히 공감되었던 구절이 몇 가지 있는데요.
도서관은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보통 누군가와 함께하는 친목 공간인 음식점이나 영화관 등과 다르게 도서관은 홀로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책이라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든 앉아 책을 읽노라면, 나라는 사람 그 자체만으로 온전히 공간에 녹아드는 느낌이 들거든요. 오롯이 몰입하여 책을 읽다 보면, 왠지 교회에서 기도할 때처럼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고요.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독서 자체는 사실 함께이기보다 홀로 하는 활동입니다. 고독하다고 느껴질 수 있죠. 책 속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 이해하는 것, 상호작용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기에 자칫 외로운 싸움이 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과 성공적으로 교감할 때는 혼자 있으나, 혼자 있는 게 아닌 상태가 됩니다. 책 속 다양한 인물들과 이야기하며 누구보다 활발히 관계 맺을 수 있죠.
처음에는 책 두께가 두꺼운 편이라 읽기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이 가볍고 흡입력이 있어서 생각보다 술술 읽혔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난 이후에는 '이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구나' 다시금 깨달았고요. 한 사람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내가 극 중 인물이 되어 같은 시공간에서 체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오랜만에 들었거든요. 각 인물들의 사연이나 관계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최근 읽은 책 중에 풍경 표현과 서술 면에서 압도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흘러가는 여름이 아쉽다면,
올해 마지막 여름을 만끽하고 싶다면,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