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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Aug 29. 2022

이대로 여름을 떠나보내기 아쉽다면

feat.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어느새 여름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휴가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의 계절감을 만끽하지 못했는데요. 대신 우연히 추천받아서 읽었던 책 한 권으로 나름의 여름휴가 떠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입니다. 어느 여름날의 시골 전원 별장이 주무대로, 마치 내가 그 여름 별장에 같이 있는 것처럼 풍경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고 나니 마치 별장으로 휴가를 다녀온 듯 대리만족도 되었지요.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무라이 건축 설계 사무소'에 채용이 되며 시작됩니다. 대학 졸업 후, 이곳에서 주인공은 사회생활의 첫 발을 떼게 되는데요. 사무소의 건축가 무라이 선생님은 70대의 나이에도 정정하게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본인만의 주관이 확고한 장인입니다. 무라이 사무소는 '국립현대도서관'의 설계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경합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이 경합을 한적한 시골 여름 별장에서 준비하게 됩니다. 여름 한 철을 그곳 별장에서 지내며 경합을 준비하기도 하고, 사무소 직원들과 여러 사건들을 겪어내며 뜨거운 여름날을 보내게 되죠. 


 책을 읽는 내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습니다. 자연에서 주인공이 음식을 해 먹고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며 힐링이 되었듯이, 소설에서 역시,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의 소소한 일상(요리를 하거나 풍광을 즐기는 등)을 접하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디테일하고 생동감 있는 표현에,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그곳에 머무는 듯한 느낌도 들었죠. 오감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어휘들로 인해 더 생생히 느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낯선 건축 용어들이 많이 등장해서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건축 상식도 적게나마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야기 흐름상 주로 도서관 건축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져서, 꼭 건축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책과 서점, 도서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문득 제가 다녔던 도서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떠올려 보았거든요. 책을 읽으며 도서관 공간 곳곳의 숨은 의미를 알게 되자, 평소 별생각 없이 드나들던 집 근처 도서관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책은 건축에 대한 부분 외에도 한 사람의 장인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인만의 확고한 철학으로 설계에 몰두하는 무라이 선생님의 태도는, 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고요. 역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매력에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책에 인상 깊은 내용이 많았지만 그중 특히 공감되었던 구절이 몇 가지 있는데요.


도서관은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보통 누군가와 함께하는 친목 공간인 음식점이나 영화관 등과 다르게 도서관은 홀로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책이라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든 앉아 책을 읽노라면, 나라는 사람 그 자체만으로 온전히 공간에 녹아드는 느낌이 들거든요. 오롯이 몰입하여 책을 읽다 보면, 왠지 교회에서 기도할 때처럼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고요.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독서 자체는 사실 함께이기보다 홀로 하는 활동입니다. 고독하다고 느껴질 수 있죠. 책 속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 이해하는 것, 상호작용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기에 자칫 외로운 싸움이 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과 성공적으로 교감할 때는 혼자 있으나, 혼자 있는 게 아닌 상태가 됩니다. 책 속 다양한 인물들과 이야기하며 누구보다 활발히 관계 맺을 수 있죠.



 처음에는 책 두께가 두꺼운 편이라 읽기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이 가볍고 흡입력이 있어서 생각보다 술술 읽혔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난 이후에는 '이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구나' 다시금 깨달았고요. 한 사람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내가 극 중 인물이 되어 같은 시공간에서 체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오랜만에 들었거든요. 각 인물들의 사연이나 관계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최근 읽은 책 중에 풍경 표현과 서술 면에서 압도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흘러가는 여름이 아쉽다면,

올해 마지막 여름을 만끽하고 싶다면,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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