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포즈(power pose)
고백하자면 회의 자리에서 가끔 딴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 실무진 회의가 아닌 임원진 회의 자리에 배석했을 경우인데요. 회의 내용이 산으로 가거나, 아무 말 대잔치, 혹은 살벌한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자리에 앉아있는 게 곤욕인지라 유체 이탈하게 됩니다. 멍 때리며 회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관찰하는 경우도 있고요.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척하며 온갖 공상을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진행되었던 회의 시간도 그랬습니다. 그날도 역시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게 흘러갔는데요.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문득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회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서열에 따라 각자 취하는 자세가 묘하게 다른 걸 발견했죠. 일단 서열이 높을수록 어깨를 활짝 열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편안하게 기댄 상태였습니다. 반대로 직급이 낮아질수록 등은 굽어지고, 잔뜩 움츠린 상태로 무언가를 열심히 찾거나 연신 메모하는 모습이었고요. 회의 분위기가 냉랭해질수록 실무자들의 몸은 더 움츠러들었죠. 그 자리에서 누가 갑이고 을인지 너무도 명확히 보이더군요. 그 모습을 보자니 이전에 들었던 TED 강연이 떠올랐습니다.
하버드대 교수인 에이미 커디(Amy Cuddy)의 TED 강연입니다.
'신체 언어가 당신의 모습을 만듭니다(Your body language shapes who you are)'라는 주제의 강연은 TED 조회 수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일으킨 강의입니다. 단순히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마음 상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파워풀하고 당당한 자세(마치 원더우먼 포즈처럼)를 취하는 것만으로 실제로 자신감이 높아진 연구 사례를 이야기합니다. 힘 있는 자세를 취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험을 쉽게 무릅쓰거나,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감소시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겁니다. 이는 성공 가능성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요. 그래서 실제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파워풀한 포즈를 취하는 것-그런 척을 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면접을 보거나 프레젠테이션 앞서서도 이를 활용하여 단 2분이라도 자신감 있는 자세를 취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고요.
실제로 에이미 커디 교수 또한, 이를 절실히 경험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심한 차 사고로 인해 머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대학 공부가 힘들 거라며 우려 섞인 말을 내뱉었고, 그녀 역시도 학업을 그만두려 생각할 만큼 한계에 부딪혔다고 하지요. 그녀는 계속된 좌절에 낙심하여 프린스턴 대학에서 첫 강연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지도 교수에게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지도 교수는 '너를 믿는다. 너는 여기 남아있을 거야. 그렇게 할 것이라 생각하렴' 하며 용기를 북돋웠고, 그 말에 힘입어 결국 무사히 해냈습니다. 이후에는 하버드에서 강의까지 할 수 있었고요.
그 뒤로 그녀는 해낼 수 없을 거라 스스로를 의심하는 학생에게 용기를 북돋으며 말한다고 합니다.
네가 그렇게 될 때까지, 그런 것처럼 속이렴
(Fake it 'til you become it)
해낼 수 있다고,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단지 '그런 척'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마치 속임수를 쓰는 것처럼 계속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대신 완전히 그렇게 될 때까지, 즉 나조차도 속아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연기하는 게 필요하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자세를 취하면 실제로 강한 사람이 되어 성취를 높여준다는 것, 에이미 커디 교수는 이를 '파워 포즈(power pose)' 이론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사실 이 이론은, 후속 연구에서 실험의 효과성이 없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통계 조작 의혹이 불거지며 한동안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 자체의 신뢰도를 떠나서 '태도를 바꾸면 마음가짐이 바뀐다'는 전제 자체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정 등 신체 상태에 따라 감정에 변화가 생긴다는 여타 연구 결과들도 많고요. 행동이나 몸짓이 우리 마음이나 정신에 끼치는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큽니다.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 품이 드는 일도 아니고 효과가 있든 없든 밑져야 본전이니, '그런 척' 해보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감 있는 척, 행복한 척, 즐거운 척 등등 말이죠.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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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감이 낮아져 있나요?
반복된 실패에 기운이 없진 않나요?
그렇다면 잠시 어깨를 활짝 펴고, 축 늘어진 고개를 세워 보는 건 어떨까요?
어느 순간 길러진 용기와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