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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Nov 08. 2022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feat.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며칠 전, 저자 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습니다. 과학 서적과 에세이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서평에 이끌려 관심이 갔었는데요.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어서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왜 베스트셀러임에도 독자들의 호불호가 강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감상 후기를 보면 대부분 유려한 문체와 과학, 철학, 역사학의 감동적인 융합 등 호평 일색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너무 많은 내용들이 복잡하게 얽히는 느낌이라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자 의식의 흐름대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감정선을 따라가기 버거웠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저자는 판단과 분류의 위험성, 즉 범주화에 대해 경계하는 의견을 보이는데요. 저 역시 공감하는 바입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요즘 유행하는 MBTI가 떠올랐습니다. MBTI 결과를 참고사항으로 보아야 함에도, 간혹 유형별 특성에 매몰되어 쉽게 '그런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저도 그러했고요).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엇이든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어 한정 짓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 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보는 것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처럼, 보이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가 아닐 때가 많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주창한 '무지의 지', 즉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늘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적이라 느꼈던 구절입니다. 저자는 '어류'라는 분류를 생물 분류학자가 의도적으로 범주화했다고 보고 있는데요. 사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조류나 양서류, 포유류가 존재하는 건 맞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진실과 거짓조차, 무엇이 정답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이전에 지녔던 안 좋은 습관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때 제가 잘 아는 분야의 주제라고 생각되면 주의 깊게 듣지 않는 버릇이었죠. 겉으로는 잘 들어주는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하며 집중 못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된통 당한 적이 있었는데요. 얘기를 대충 들었다가, 일을 잘못 처리한 겁니다.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일을 처리했다는 것이 드러났지요. 그 후로 '내가 안다고 믿는 것도 다시 보자'라고 생각하며 매사 말을 귀담아듣거나 경청하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는 모른다고 인정하기 쉽지만, 오히려 어슴프레 아는 세계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가 쉽기 때문이지요. 평상시에도 주의하려 노력하지만, 가끔 이런 본능이 꿈틀거려서, 누군가에게 내가 아는 것들을 주제넘게 전달하고 싶어질 때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일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되새겨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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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떠신가요?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이 진실과 달라 당황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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