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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Jun 12. 2024

출근 전에 지치는 출근길

#3. 출퇴근길의 고단함 (feat. 지옥철)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 박 주임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재택근무였다. 지옥 같은 출퇴근을 겪지 않아도 되니, 꼴 보기 싫은 상사 얼굴을 안 봐도 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비상 상황이 해제됨과 동시에 회사에서는 전면 사무실 근무를 발표했다. 생산성 향상이 그 이유였다. 발표 전, 재택근무 여부에 대해 직원 수요 조사를 실시했지만, 모두가 아는 명목상의 조사였다. 비밀리에 부쳐진 투표 결과는 알게 모르게 퍼져나갔다. 옆 팀 윤 사원에게 들은 말로는 직급별로 투표 결과가 달랐다고 한다. 아래 직급은 찬성 비율이 높고 윗직급은 반대 비율이 높았다. 박 주임은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윗사람들은 부하 직원 감시하는 게 낙인데, 재택 근무하면 일일이 체크하기 어려우니 그런 것이다. 

 재택 근무하면 회사 입장에서도 비용 절감하고 좋을 텐데 왜 구태의연하게 사무실 근무만 고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출퇴근 길은 더 고역이었다. 이미 재택근무라는 달콤함을 맛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분명 이전에도 오갔던 길인데 어떻게 다녔나 싶다. 붐비는 출근길이 싫어 퇴사를 결심했다는 어느 퇴사자 유튜브를 본 적 있다. 그 말에 정확히 공감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출퇴근 시간은 편도로 한 시간 좀 넘게 걸린다. 버스나 지하철 놓칠 경우를 생각해서 넉넉잡아 한 시간 반 전에는 집에서 나와야 한다. 그만한 통근 시간은 수도권에서 흔한 일이라며 취업했지만, 막상 다녀보니 스트레스는 통근 시간과 상당히 비례했다. 출근 전에 이미 녹초가 되고, 퇴근 후에는 집에 오자마자 쓰러지듯 잠드는 게 일상이다. 


 박 주임은 견디다 못해 회사 근처로 집을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임대료는 이미 높은 시세로 형성되어 있었고, 도저히 다시 원룸(그것도 비싼)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서 마음을 접었다. 또한 복작대는 그곳에서 일하다 못해 일상생활까지 보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결국 이직 아닐 바에는 현상 유지 밖에 답이 없다.

 

 문득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니 그의 마음이 갑갑해진다. 매일의 출퇴근길을 떠올려보자면, 마치 스펙타클한 영화 한 장면 같달까. 




제목: 박 주임의 출근길

장르: 서스펜스 액션 활극

주연: 박 주임

조연: 우락부락 아저씨, 우렁찬 아주머니 



 S#1. 버스 정류장


 박 주임이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길은 서스펜스 액션 활극이 따로 없다. 일단 지하철역 가는 길부터가 스펙터클하다. 집에서 지하철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버스로 5분 정도 걸린다. 좀 일찍 나와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겠노라 마음먹지만, 늘 촉박한 준비 시간에 쉽지 않다. 지하철 출발 시각에 맞추려면 도보로는 빠듯해서 늘 버스를 타게 된다. 다들 같은 처지인지, 그 시간대 버스는 항상 북적인다. 그마저도 숨 쉴 구멍은 있던 예전과 달리, 얼마 전 근처 신축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이후로 버스에 사람이 훨씬 많아진 느낌이다. 이제 막 입주 시작이라는데 이 정도면, 입주를 다 마치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헐레벌떡 도착한 정거장, 버스 한 대가 도착하지만 기사의 손짓과 함께 서지 않고 지나친다. 버스 도착 알림을 보니 6분 뒤 도착. 박 주임은 현황판에 타야 할 버스가 "혼잡" 상태로 바뀌자 불안해진다. 이번에도 손짓과 함께 떠나가버리면 어떡하지, 이거 놓치면 지각인데, 뒤목이 뻣뻣해진다. 멀리서 달려오는 버스. 가슴이 쿵쾅거린다. 딱 봐도 사람이 빽빽이 들어찬 상태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버스가 서게 될 적당한 위치를 찾느라 눈치 게임 중이다. 박 주임은 전략적으로 뒷문 근처를 노리고 서서 기다린다. 경험상 만원 버스에서 앞문은 사이드 미러 때문에 꽉 차게 태우지 않지만, 뒷문은 그보다 널널한 편이었다. 

 드디어, 버스 도착. 예상 대로 뒷문만 열렸다. 앞문 께 서있던 몇몇은 얼굴을 찌푸리며 뒷문으로 달려간다. 



 S#2. 버스 안


 '먼저 타야 돼!!!' 


 박 주임은 절박하게 가방을 앞으로 움켜쥐고, 뒷문 계단에 올라선다. 사실 이미 뒷문도 포화상태다. "문 안 닫혀요~ 다음 차 타세요~"라는 기사님 목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살아야지, 읊조리며 박 주임은 처절하게 올라탄다. 결국 계단 옆 봉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상태로 뒷문이 닫히고, 여기저기 내쉬는 한숨 소리와 함께 버스는 출발한다. 

 박 주임은 다음 정거장 전까지 계단에 내려서서 숨통을 틔운다. 그러다가 다시 다음 정거장이 되면, 비집고 타려는 사람들을 위해 엉거주춤 봉에 매달린다. 이 상태를 몇 번 더 반복한다. 그리고 드디어 하차 정류장에 도착하자,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땅에 발을 딛는다.  



 S#3. 지하철 승강장


 지하철 역은 승하차 칸마다 두 줄씩 길게 늘어선 상태다. 출구가 가까운 플랫폼에 서서 몇 대의 지하철을 보내야 탈 수 있을지 계산해본다. 아뿔싸, 이대로라면 세 번째 열차쯤 간신히 탈 것 같다. 

 곧이어 들어오는 열차, 뒤엉키며 올라타는 사람들, 다시 들어오는 열차, 한데 버무려져 올라타는 사람들.

 박 주임이 속으로 찜해둔 세 번째 열차, 몸을 밀어 넣으려던 때 복병이 나타난다. 열차 안에 타고 있던 우락부락 아저씨다. "더 이상 못 타요, 여기. 다음 거 타요!!" 앞에 딱 버티고 서서 들어가지 않는 아저씨로 인해 이번 열차도 보내게 생겼다. 박 주임은 울먹이며, "안 돼요. 저 그럼 지각이란 말이에요." 소심하게 열차 내 진입을 시도해본다. 하지만 요지부동인 아저씨와 열차 내 사람들. 

 그때 박 주임 바로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거, 안에 자리 있구먼. 들어갑시다 쫌!!!" 우렁차게 외치며 가방으로 그를 밀며 들어선다. 그 김에 엉겁결에 박 주임까지 무사히 열차에 안착, 그는 존경의 눈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S#4. 지하철 내부


 무사히 탔다는 안도감에 하차역까지 몇 번의 전쟁은 애교로 치부할만했다. 비록 정차하는 역마다 타려는 자와 방어하려는 자, 공간을 차지하려는 자와 비키지 않으려는 자의 고성과 불평이 난무하긴 했지만. 

 지하철 안은 크게 1등 칸에서 4등 칸으로 나뉜다. 1등 칸은 의자 착석 자리, 2등 칸은 의자 바로 앞자리, 3등 칸은 마주 보는 의자 사이 통로(손잡이는 잡을 수 없는 공간), 마지막으로 승하차 바로 문 앞 공간이 4등 칸이다.

 박 주임은 그 간의 지하철 짬밥으로 4등 칸에서, 통로의 3등 칸을 거쳐 2등 칸인 의자 앞자리에 자리 잡고 선다. 2등 칸은 희망이 있는 자리다. 운 좋으면 앉을 수 있는, 1등 칸으로 계급 상승이 가능한 칸이랄까. 혹여 모를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정확히 의자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선다.

 

 박 주임은 쓰윽 앞사람의 행동거지를 관찰한다. 경험상 먼저 내리는 사람에게는 비슷한 행동 패턴이 있다. 열심히 보던 핸드폰에서 눈을 뗀다던지, 읽던 책을 덮는다던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던지, 내릴 역이 표출되는 전광판을 자주 응시한다던지, 뭔가 평온하지 않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면 대부분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곧 내리곤 했다. 그리고 지금 박 주임 앞에 앉은 여자가 그런 몸짓을 보이고 있다. 안경 끼고 책을 보던 젊은 여자는 읽던 책을 덮고 가방 매무새를 정돈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릴 채비를 하며 일어선다. 박 주임은 오늘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엉덩이를 돌리며 의자로 향한다. 

 그 순간, 공중에서 휙 날아오는 가방. 흠칫 놀라 돌아보니 아까 목소리가 우렁찼던 아주머니다. 


 지하철을 비집고 들어왔던 기세로 아주머니는 선 가방, 후 행동을 시전하며 의자로 몸을 진격한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자마자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박 주임은 두 눈 뜨고 뺏긴 자리에 못내 당황스럽다. 하지만 입씨름하기에는 아주머니 등치가 크기도 했고, 공연히 불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아 들썩이던 입술을 다문다. 무슨 사정이 있으시겠지, 애써 마음을 다잡아본다. 결국 오늘 출근길은 2등 칸에서 마무리할 모양새다. 



 S#5. 지하철 역사 안


 박 주임이 내려야 할 역은 서울에서도 직장이 밀집된 역이다. 꽉 들어찬 열차에서는 내릴 때도 스킬이 필요하다. 미처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박 주임은 문 쪽으로 몸을 틀고 가방을 안으며 비장하게 내릴 태세를 갖춘다. '저도 내릴 거예요'라는 암묵적인 옆사람의 눈짓에 안심하며, 오른쪽 하차문으로 몸을 향한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수문 개방된 물처럼 휩쓸려 나가는 사람들. 박 주임도 넘실대는 사람들 위로 몸을 싣는다. 개찰구까지 이어지는 사람 파도에 떠밀려 반쯤은 붕 뜬 상태로 발을 내딛는다



 S#6. 지하철 출구 앞


 박 주임은 장렬한 전투를 끝내고 지하철 출구 밖으로 나온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교도소 탈출했던 앤디의 심정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숨을 몰아쉬고 착장 상태를 점검한다. 빳빳했던 옷은 그새 꼬깃꼬깃해졌고, 가방 한 귀퉁이가 움푹 파였다. 

 내일부터는 에코백을 들고 타야겠다, 생각하며 회사 건물로 향하는 박 주임. 

그리고 그를 조망하며 페이드 아웃.


 


직장생활은 왜 힘든 걸까?


#. 출퇴근길의 고단함



 일반적인 직장의 근무시간은 9 to 6입니다. 그리고 회사들은 주요 지역에 밀집되어 위치합니다. 다들 출퇴근 시간에 맞춰 비슷한 지역으로 향하므로, 대중교통은 당연히 붐빌 수밖에 없지요. 재택근무나 유연근무 등 운 좋은 직장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만원 버스나 지옥철을 타고 고단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합니다. 사람이 밀집한 대중교통이 스트레스를 끌어올린다는 것은 연구결과를 찾아보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직주근접이 좋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긴 통근시간을 감내해야 할 경우, 통근시간에 비례하여 스트레스는 하늘 높이 치솟습니다. 한 번쯤 고단한 출퇴근을 해본 사람이라면, '쾌적한 출퇴근'을 직장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꼽을 겁니다.


 시끌벅적한 출근길 전쟁은 하루의 시작일 뿐입니다. 힘든 전투를 끝내고 회사에 도착하면, 더 큰 전쟁이 기다리고 있지요. 학생 때는 통학 거리가 멀더라도, 공강 시간 등 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지만, 직장인에게 그런 사치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까지 회사에 쏟아붓고, 붐비는 퇴근길에 집으로 돌아오면 그야말로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가 되기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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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출근길, 흘러나오는 버스 안내 방송이 귀에 박혔습니다.

"새벽의 설레임부터 한밤의 고단함까지 함께 합니다"


방송 멘트를 듣고 생각했습니다. 

새벽 만원 버스에서 설렘을 느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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