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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Jun 19. 2024

회사 다니는데 왜 불안할까

#4. 불안이 디폴트



 요즘 최 과장의 감정 디폴트값은 '불안'이다. 일은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불안하다. 희한한 일이다. 이번에 꽤 큰 규모의 회사로 이직했지만, 기쁨도 잠시, 다시 불안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민다. 은근히 느껴지는 공채 출신과의 차별과 성과가 없으면 언제 팀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옥죈다. 

 최 과장이 이전 직장에서 퇴사한 건 매너리즘 때문이었다. 일은 익숙해서 할만했지만 더 이상 발전도 없는 것 같고 계속 정체되어 있는 느낌에 마침 승진도 했겠다, 보기 좋게 퇴사를 질렀다. 경력도 있으니 갈 데 없겠느냐며 호기롭게 제 발로 걸어 나온 회사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퇴사 후 일 년쯤 지났을까, 초조하던 차에 선물 같던 최종합격 소식, 드디어 백수 탈출이라는 생각에 날듯이 기뻤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요즈음의 감정 상태는 실업 상태에서 느꼈던 불안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회사에 다시 들어가면 안정될 줄 알았는데, 허울은 인지도 있는 회사 네임 밸류에 만족스러운 직급이지만, 마음의 안정은 쉬이 찾아지지 않는다. 일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이 일을 도대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이 길이 나와 맞는 길인지, 끊임없이 묻는 과정의 연속이다. 분명 입사하면 안정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요동치는 마음을 안고 근무하자니, 어째 백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때와 달라진 점은 단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일 뿐, 알 수 없는 불안함의 근원은 그대로다.


 심란한 나날을 보내던 중 오랜만에 전 직장 후배 김 대리에게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느냐며 가벼운 안부로 시작해서 다음 주 저녁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는다. 통화목록의 김 대리 이름을 바라보며 문득 그와의 첫 만남이 기억난다. 

 몇 년 전 사수-부사수 관계로 처음 만난 김 대리는 사회초년생으로 바짝 얼어 있었다. 시켜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뻔한 말로 채용되었던 그는, 정말로 시키는 일은 뭐든 열심히 해냈다. 

 팀장도 따로 없는 팀에서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며 그와 힘든 시기를 버텨냈다. 그래서인지 퇴사하면서도 김 대리를 두고 나오는 게 유독 마음에 걸렸었다. 




 약속한 날 저녁, 최 과장이 식당에 들어서자 벌떡 일어선 김 대리가 깍듯하게 조아리며 외친다.


 "아유~ 우리 최 과.장.님. 이직을 축하합니다~"

 "일단 얼른 앉어, 잘 지냈지?"

 "뭐 죽지 못해 다니고 있달까요"

 "이번에 승진했던데~? 드디어 대리네. 내가 '대리는 돼야 데리고 다닐 맛 나지 않겠냐고' 농담치던게 엊그제 같은데"

 김 대리가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그때 과장님이 다 애써주신 덕에 이렇게 대리가 됐습죠"

 최 과장은 김 대리 잔에 소주를 쪼르륵 따라주며 픽 웃는다.

 "그만 놀리고, 회사는 요즘 어때?"

 "뭐 그대로예요. K사에 흡수된다 어쩐다 말은 많은데 뭐, 주총 지나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계속 심란한 상태랄까. 잘 나가신 거예요, 과장님은"

 내심 최 과장은 안도의 마음을 숨기고 되묻는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이직 생각은 있고?" 


 이직 생각 있느냐는 말 한 마디에 속사포 쏘듯 고민을 토해내는 김 대리. 

일은 익숙하긴 한데 정체된 느낌이든다는 말, 합병 얘기 나오는 이 마당에 자리가 온전할까 걱정된다는 말. 미래가 불안하다는 말, 승진한 지금이 이직 타이밍인 것 같다는 말, 하지만 이 출처 모를 불안감이 옮기면 나아질지 모르겠다는 말, 직장생활 자체에 매너리즘이 있는 건 아닐까 싶다는 말. 


 한참을 혼자 떠들던 김 대리가 번뜩 정신이 드는지 몸을 고쳐 앉으며 말한다.


 "이거,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과장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순간 최 과장은 말문이 막힌다.

 잠시 멈칫한 후에 입을 뗀다.


 "아, 나는 말야………. "


 



직장생활은 왜 힘든 걸까?


#. 불안한 마음



 퇴사를 결심한 후배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매일 불안한 상태로 산송장처럼 회사를 다니는데, 과연 직장인이라고 더 나을 게 뭔지. 취업 준비생 때와 별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었죠. 구직활동을 할 때는 회사만 다니면, 모든 불안이 해소될 것 같지만, 막상 회사를 다니면 또 다른 불안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밉니다. 직장인이라는 것이 고용주에게 고용된 피고용인의 입장이다 보니, 목숨줄을 쥐고 있는 고용주가 변심하면 회사에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승진에서 누락되어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언제까지 여기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회사에 비전이 없는데 옮겨야 하나 싶은 불안감, 등등. 마냥 평온한 마음으로 다니는 직장인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어떤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따라서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변함없이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직장인 = 불안]의 공식은 피할 수 없는 숙명 아닐까, 싶습니다. 

단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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