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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Jun 26. 2024

빨간 날만 기다리며 사는 마음

#5. 방학이 없음



 열 살짜리 조카가 물었다. 

 "이모, 회사 다니면 뭐가 제일 힘들어?"


 혜미는 주저 없이 답했다. 

 "음.... 방학이 없다는 거???"


.

.

.


 혜미의 요즘 낙은 해외여행이다. 유럽 배낭여행 찬스라고 불리는 대학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다 인턴쉽이다 해서 여력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운 좋게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되는 바람에, 그 사이 여유부리며 쉴 시간도 없었다. 돈 벌어서 실컷 여행 다녀야지 생각했지만, 신입시절에는 신경 쓸 것도 많고 모아둔 돈도 없어서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쯤 미루다가 처음 간 해외여행은 신세계였다. 이 좋은 걸 여태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만큼. 여행지에는 스트레스도 팍팍한 삶도 없었다. 시간이 나를 위해 흐르는 느낌이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한히 주어지는 자유 속에서, 마음껏 원하는 것을 하며 충만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즐거운 만큼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여행지 도착 후에 짐 풀고 얼마 되지 않아 귀국일은 성큼 다가왔다. 


 아쉬움에 다음에는 더 길게 휴가를 내리라 마음 먹지만, 직장인으로서 일주일 넘게 휴가 가는 건 환상에 가깝다. 연차가 있지만 어쩐지 너무 길게 가는 건 눈치보인다. 다른 팀원 휴가 일정도 고려해야 하고, 프로젝트 일정과 겹치지 않게 해야 하고.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면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다. 언젠가 들었던 명언이 생각난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는 말—. 


 학창 시절이면 지칠만 하면 돌아오는 방학 때문에 학기 중을 버틸 수 있었지만, 직장인에게는 방학이 없다. 가뭄에 콩 나듯 돌아오는 빨간 날은 월급 통장처럼 금세 스쳐가고, 깨작깨작 쉬다 보니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다. 매일 '집-회사-집-회사'를 무한 반복하며 지나가는 청춘이 아쉽다. 왜 대학 때 원 없이 놀아보지 못했는지, 이대로 청춘을 흘려보내야 하는지, 지금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많아진다.


 최근 생긴 혜미의 인생 목표는 '파이어족이 되어 평생 여행 다니며 살기!'이다. (로또에 당첨되는 그날까지!)





[출근 후]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 

 컴퓨터를 부팅하자, 타이완의 홍등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인생 첫 해외여행의 감동을 잊지 못해 바탕화면으로 해두었다. 홍등거리에 얹힌 업무 보고 폴더를 마우스로 톡톡 클릭하다가 문득 '떠나고 싶다' 충동이 인다. 그녀의 마음을 읽은 걸까, 그때 울리는 카톡 알림. 단짝 친구 지은이다. 


「담달 셋째 주에 오사카 2박 3일 고고? 금욜 연차 하루 내고ㅋㅋㅋㅋ」

「소름. 나 방금 떠나고 싶단 생각했는데ㅎㅎ」

「잘됐넹! 가자ㅋㅋㅋㅋㅋ」

「잠만, 좀 볼게.... 아 그때 안 되겠다ㅜ 과장님이 이미 휴가 써서ㅜ」

「아까비ㅠㅜㅠㅜ 그럼 그 담주 황금연휴는 어때?ㅋㅋ 좀 비쌀 듯 하지만...」

「아~ 프로젝트 일정 좀 봐야겠다~ㅎ 근데 지금 마감때매 바쁨ㅜㅠㅜ 퇴근하고 다시 톡 할게!」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검색한 일본 항공료, 비수기 평일보다 배는 비싼 가격이다. 혹시나 해서 검색한 숙박료 역시 비수기보다 두 세배는 비싼 가격,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싶다가 이러려고 돈 벌지 싶기도 하다. 


「가자, 일본!ㅎㅎ」


 혜미는 몇 번 망설이다가 지은에게 카톡을 보낸다. 꽤 큰 금액의 항공료와 숙소에, 다음 달 카드값이 걱정되긴 하지만 여행 아니면 무슨 낙이 있나 싶다. 

 어째 무한 굴레에 빠진 듯도 하다. 일해서 돈 벌고, 스트레스 받고, 스트레스 풀러 돈 쓰고, 통장 메꾸려 다시 일하고. 

 일을 안 하면 그 좋아하는 여행을 비수기에 갈 수 있으니 돈 버는 거 아닐까, 싶으면서 퇴사 충동이 올라온다. 이렇게 쫓기듯 다녀오지 않아도 되고 널널하게 여행할 수 있을 텐데. 연차를 어떻게 붙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촉박한 일정에 숙제하듯 촘촘히 루트 짤 필요도 없을 거다.


 하지만 백수이던 친구 말이 떠올라 고개를 젓는다. 시간은 많아서 좋지만 불안함에 여행지에서도 마음 편히 놀 수 없다고 했다. 대책 없는 여행은 달콤하지 않다며, 돌아올 곳이 있기에 여행이 즐거운 것이라 했다. 



'잘한 걸까? 잘한 거야!' 

'잘한 거겠지? 잘한 거야!'


 혜미는 충동적으로 지른 여행을 합리화해본다. 그러고선 새벽까지 '오사카 가볼 만한 곳', '오사카 맛집', '오사카 쇼핑리스트' 등을 검색해보다가 잠이 든다.



직장생활은 왜 힘든 걸까?


#. 방학이 없음



 매년 달력을 펼칠 때면 올해 공휴일은 며칠인지 체크합니다. 얼마 안 되는 빨간 날이 주말과 겹칠 때면 아쉬움에 탄성을 지르곤 하죠. 그만큼 직장인에게 공휴일이란 숨 쉴 구멍과도 같습니다.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가 있지만 원하는 대로 쓰기 쉽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등 업무 일정도 고려해아하고, 대직자가 필요한 경우 다른 팀원과의 조율도 필요합니다. 그마저도 방학처럼 한 두 달은 꿈도 못 꾸고 최대 일주일 휴가가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쉬었다는 느낌이 들려면 길게 쉬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덕에 그제야 쉰다는 동료들의 농담이 뼈아프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며칠이라도 일정을 길게 빼보겠다고, 황금연휴에 휴가를 잡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요가 많으면 가격도 올라가는 법, 극성수기라 불리는 기간에는 모든 것이 비쌉니다. 항공료부터 숙박비 등에 이르기까지 배로 지불해야 하지요. 비수기에 갔다면 꽤 절약했을 금액을, 남들 갈 때 간다는 이유로 큰 금액을 써야 합니다. 또한 그 기간에는 공항이든 여행지든 같은 처지(?)의 사람들로 인해 북적북적합니다. 

 힘겹게 여행을 떠나서도 업무 특성에 따라 연락을 받기도 합니다. 몸은 여행지에 있지만 정신은 회사에 있게 된달까요. 마음 놓고 OFF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을 때는 다 때려치우고 맘 편히 쉬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납니다.


 대학교수나 교사처럼 공식적인 방학이 주어지거나, 일부 회사에서 복지로 장기 휴가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장기 휴가가 보편화된 문화가 아니므로, 일반 직장인이 장기 휴가를 꿈꾸기란 어렵습니다. 

 대부분 퇴사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장기 여행인 것도, 이러한 보상심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휴가도 마음껏 못 가고 전전긍긍하며 흘려보낸 날들이 아쉬워서, 말입니다.


차라리 정부에서 직장인 방학을 보장해주면 좋을 텐데... 

'직장인 재충전 보장법'의 법제화, 꿈같은 얘기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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