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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Jul 10. 2024

매뉴얼 없는 주먹구구식 일처리

#7. 체계 없는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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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주식회사> 


경영지원팀 사원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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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지는 자신의 소속과 이름이 적힌 사원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5년 이상 준비한 고시 공부를 접고, 수백 번의 서류 광탈 끝에 연락 온 고마운 회사였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잘 되지 않는 취업에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던 차,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준 회사에, 그리고 날아든 최종 합격 소식에, 정말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처럼 바짝 긴장한 면접자가 옆 회의실로 들어간다. 

 민지는 비어있는 옆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업팀 오 사원은 하루 만에 퇴사했다. 대표와 팀장은 그에게 근성이 없다고 했지만, 민지는 출근 첫날 무리한 업무 분장을 들이민 탓이라고 생각한다. 민지는 바짝 긴장하며 들어가는 면접자의 모습에서 몇 달 전에 진행된 자신의 면접을 떠올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은 민지의 생애 첫 면접이 진행된 날이었다. 서늘한 날씨에 등이 축축할 만큼 긴장했었다. 걱정과 달리 면접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깐깐한 인상의 면접관은 업무역량 관련 질문보다는 주로 개인 정보를 물었다. 앞으로 결혼 생각은 있느냐, 애인은 있느냐, 술은 잘 마시느냐는 질문이 긴장을 풀어주려는 배려라고 애써 좋게 생각했다. 

 처음 1차 면접 본 날, 시간 되면 2차 면접까지 보고 가라는 말에, 얼떨결에 최종 면접까지 참여했다. 최종 면접은 대표이사와의 단독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유학 생활을 오래 했다는 대표는, 말에 묘하게 영어식 억양이 배어있었다. 행복 주식회사는 직원들의 행복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긴다고 했다. 구성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할 거라 말하며 행복론을 설파했다. 그 이후에도 대표는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회사 설립 스토리와 본인만의 철학을 주입하느라 바빴다. 아마 중간에 거래처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면 면접은 내내 이어졌을 것이다.


 얼결에 최종 면접까지 보고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회사로부터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을 통보받았다. 1차 면접을 본 이후로 최종 합격까지 일사천리였다. 면접 때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느냐는 말에 즉시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렇게 다음날 바로 출근하게 될 줄은 몰랐다.






 <행복 주식회사>의 직원은 총 5명이다. 그리고 부서는 그보다 많은 7개이다. 입사 지원하며 본 회사 사이트 내의 조직도는 화려했지만, 알고 보니 겸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민지 역시도 여러 부서를 오가며 커버치고 있다. 소속은 경영지원팀인데, 다른 부서에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업무는 모두 민지에게 온다. 이미 몇 인분의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고객 클레임 처리도 경영지원팀 담당이라는 말을 들었다. 박람회 준비도, 대표님 출장 일정 조율도 경영지원팀 담당이었다. 며칠 전 만난 친구에게 업무가 몰려서 힘들다 말하니, 너도 다른 사람한테 넘기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것도 넘길 사람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민지의 직속 상사는 경영지원팀장인 사모님이다. 일주일에 두 번만 출근하는 통에 의사결정의 대부분은 전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침에 했던 의사결정이 번복되는 일은 부지기수다. 팀장의 마음대로 바뀌고, 대표 한 마디에 또 바뀌고, 다시 바뀌고. 죽 끓이듯 심한 변덕은 시간이 흘러도 적응되지 않는다. 

 매뉴얼 없는 업무 역시 허다하다. 상사에게 말해도, 매뉴얼이 없으니 직접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말 뿐이다. 매번 이렇게 맨 땅에 헤딩하며 업무를 해야 하는 건지, 오늘은 또 어떤 일이 터질지, 업무 시간 내내 가시밭길이다. 주먹구구식 일처리가 이제 신물이 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은 건, 매주 월요일 직원 전체 회의다. 말 그대로 회의를 위한 회의다. 한 주를 시작하며 공유사항과 목표를 점검하는 취지라지만, 대부분 대표의 히스테리와 함께 한두 명의 희생자를 내며 끝나고는 한다. 격주 금요일마다 있는 독서토론회는 어떤가. 이 또한 대표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중소기업도 이제 복지에 신경 써야 한다며 격주마다 지정 도서를 읽고 토론을 한다. 하지만 민지는 이미 직원들이 뒤에서 그런 복지 대신 급여나 올려줄 것이지,하며 수군대는 것을 들었다. 

 


 문제의 그날도 전체 회의가 있던 월요일이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에 대표와 온 직원이 둘러앉았다. 경영지원팀장인 사모는 오늘도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지는 시선을 피해 가만히 눈을 내리까는데, 대표의 질문이 정수리에 와 박힌다.


"민지 씨, 경영지원팀 존재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민지는 회사에 지원하며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린다. 

"회사 구성원의 만족도를 위해 일하는 것..."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대표가 미간을 찌푸리며 틈을 가로챈다.

"아니지, 아니지, 다시"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아니지, 아니지."


 대표는 벌떡 일어서더니 뒤켠에 있던 화이트보드를 중앙으로 드르륵 끌고 온다. 거기에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크게 쓰고는 글자를 둘러싼 원을 힘주어 그린다.

"경영지원팀은 우리 고객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곳 아닙니까, 정 대리. 어떻게 생각해요?"

반쯤 졸던 정 대리는 번뜩 눈을 부릅뜨고 외친다.

"아 예예. 맞습니다. 고객의 행복이죠."

"우리 고객은 누구죠?"


 팀의 존재 이유에서 시작한 대표의 말은 고객의 정의를 거쳐 행복의 정의로 흐른다. 입사 한 이래 벌써 수십 번은 족히 들은 행복론이 다시 펼쳐진다. 중간중간 던져지는 질문은 매번 대표의 기분에 따라 원하는 답도 달라지는 통에, 무슨 말을 해도 비위를 맞추기 쉽지 않다. 그리고 결론은 늘 그렇듯 고객의 행복을 위해 밀도 있게, 받는 것보다 더 일하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입사 초기에는 장기적인 비전을 위해 노력하면 돈은 따라올 거라는 말을 믿었지만, 지금은 월급을 더 주기 싫어서 가스라이팅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업무는 밀려 있는데 끝나지 않는 회의(라 쓰고, 대표의 잔소리라 불리는―)에 민지의 정신도 안드로메다로 향한다. 점점 멀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오늘은 퇴근하고 꼭 이력서를 업데이트 하겠노라 다짐해 본다. 





직장생활은 왜 힘든 걸까?



#. 체계 없는 회사



 체계 없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건 수시로 바뀌는 의사결정이었습니다. 결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의사결정에, 사공이 많은 탓인지 이리저리 흔들리는 지침에, 도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몰랐지요. 상사에게 물어봐도 해결이 안 되고, 그때그때 미봉책으로 업무를 메꾸었습니다. 프로세스를 바로잡기에는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여 계속 그 상태로 둘 수밖에 없었지요. 회사가 마치 구멍가게처럼 운영되는 모습에 계속 다녀도 괜찮을지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체계 없는 조직은 높은 확률로 규모가 작은 곳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먹구구식의 업무 진행이 습관화된 곳이지요. 대부분 이전 자료도 없이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하나하나 프로세스를 세워야 하는 경우입니다. 업무 프로세스화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사사건건 직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규모가 크고 체계적인 조직에 가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에 더해서 사람 관계 혹은 다른 불만 사항이 쌓이면 퇴사 욕구가 더욱 강하게 치솟습니다. 다들 느끼는 바는 같은 지라, 하나둘씩 떠나면 남는 직원은 몇 안되지요. 대부분 직원들의 근속기간이 일 년이 채 안되게 됩니다. 일부 고인 물들 만이 회사에 계속 머무르고요.


 물론 이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접 매뉴얼 등 체계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하며, 업무 역량이 쌓이기도 하지요. 아직 회사 체계는 갖추어지기 전이지만, 상사나 같이 일하는 동료가 협조적이고 서로 존중하는 경우, 함께 성장하며 회사를 키워가는 좋은 케이스도 있고요. 

 그러므로 '체계 없는 조직'이 꼭 퇴사의 절대적인 사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관계나 급여 등 다른 영역에서 보완이 가능하면 상쇄가 되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퇴사는 '체계 없는 회사'라는 말속에 숨겨진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결심하는 것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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