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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Dec 19. 2023

삶의 태도에 관한 품격 있는 조언

<라틴어 수업>



 제목이 주는 첫 느낌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따뜻한 내용이 많아서 정말 좋았던 책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내용은 '라틴어' 언어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라틴어에 관한 어원이나 문법만 다루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와 연관된 다채로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지요. 라틴어에 베이스를 두고 있긴 하지만, 책은 시종일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들려줍니다. 그래서인지 딱딱하고 어려운 언어학 서적의 느낌보다는, 말랑말랑하고 편안한 에세이의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소 추상적이어서 전달하기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을 사례와 접목시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고,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지요. 왜 저자인 한동일 교수님의 강의가 명강의로 꼽히는지 알게끔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삶의 태도에 관하여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을, 제 나름대로 다섯 가지 파트로 나누어 정리해보았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관하여]


#1. 열린 마음

라틴어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수평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겁니다. 
로마법에서는 유독 젊은이를 가리키는 나이대가 만 20세부터 만 45세까지 무척 넓습니다. …… 병력의 원활한 공급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유구한 역사가 흐른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유럽인들에게 나이에 대한 강박을 덜어주는 순기능의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실제로 제가 "아, 난 무언가를 공부하기엔 너무 늦었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이탈리아 친구들은 '넌 아직 젊어!'라고 말해주었어요.


 언어와 문화는 따로 분리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높임말 표현이 있는 아시아권과, 그렇지 않은 라틴어 기반 문화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쓰는 언어를 기반으로 사고하게 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권 기반이기에 특히 나이에 민감하고 서열에 엄격한 경향이 있습니다. 특정 나이에 꼭 해야 하는 과업에 압박감을 느끼거나, 나이 대비 아무것도 이룬 것 없다고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측면에서 라틴어 문화권의 나이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는 배울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얼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고, 또 지금도 절대 늦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말, 문득 이전에 읽었던 <레이트 블루머>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2. 개인의 성장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성장이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닙니다.  …… <라틴어의 성적 구분> 평가 언어가 모두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잘한다/보통이다/못한다' 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이 아니라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르고,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당장 노력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내가 언제 꽃 피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미리 알지 못합니다. …… 그래서 그저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돌에 정으로 글씨를 새기듯 매일의 일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럽 대학의 평가방식은 대부분 절대평가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상대평가가 일반적인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측면입니다. 항상 남과의 비교가 익숙한 우리에게,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 부여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언뜻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장은 불편하고 실현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이후의 세대를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괴로웠던 유년 시절보다, 건강하게 나의 성장을 위해 노력했던 경험으로 기억되는 유년 시절이 훨씬 더 따뜻하지 않을까요?



#3. 수용성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인생은 자신의 뜻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중 많은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마도 계속 그럴 겁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것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 결국 고통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음의 표시입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대사인 '카르페 디엠'이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쓴 시구절이었다는 것은,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카르페 디엠'은 현재에 이르러 일시적인 쾌락의 즐거움을 의미하며 많이 쓰이지만, 사실 어원을 잘 들여다보면 '당장 눈앞의 것만 챙기고 감각적인 즐거움에 의존하며 살라'는 뜻이 아니라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라는 경구라고 합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항상 안정적이거나 평온한 삶이 되었을 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며 착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때라는 것은 오지 않는다고 말하죠. 살아있는 사람 만이 고통을 느끼는 데, 이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 있는 소망이라는 겁니다. 존재하기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거죠.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어쩌면 우리는 디폴트를 '행복' 또는 '완전한 상태'에 두기에 괴로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존재의 디폴트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가끔 찾아오는 행복과 기쁨을 더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4. 나만의 주관

참새도 하늘을 날고, 비둘기도 하늘을 날고, 갈매기도 하늘을 날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새도 다른 새처럼 날지 못해 안타까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모두들 자기의 방식대로 하늘을 날고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 무언가를 이뤘지만 나는 아직 눈에 띄게 이룬 것이 없다면, 그와 내가 걷는 걸음이 다르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나와 그가 가는 길이 다를 뿐이죠. ……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


 학창 시절의 습관이 남아있어 A+ 받으려 답안지 쓰듯 인생을 사는,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지닌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입니다. 저자는 답안지 쓰듯 인생을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사실 답안지는 없다는 것,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전합니다. 남과 비교하거나 주변 상황에 휩쓸려 나를 그 잣대에 놓고 맞추려는 인생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회한과 후회가 가득한 인생일 겁니다. 각자의 보폭도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도 다르므로, 주변에 나를 맞추려 하기보다 나만의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5. 가벼운 마음

"부처님 말씀에 본래 얻고 잃는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이라 했습니다. 불가에서 완전이란 없어요. 진정한 완전이란 완전의 상태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 "가장 좋은 것은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는 최대한 기뻐하고 행복을 누리되, 그것이 지나갈 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 힘든 순간에는 절망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분노를 잠시 내일로 미뤄두는 겁니다. 그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보는 것이죠.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 나는 '지금, 여기에서' 고통스러우나 신의 시간 속에서 보면 그저 흘러가는 한 점과 같을 거예요. 


 너무나 유명한 경구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생각났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어차피 지나가는 일이라 생각하면, 만사가 덧없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극단적인 허무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매사 지나치게 무겁거나 심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불과 한 달 전에 했던 고민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거나 걱정했던 일들도,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고민이었던 때가 많죠. 

 사소한 일도 걱정하고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면, 의식적으로 좀 더 가볍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책의 전반부와 중반부에서 라틴어와 관련된 문화권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어집니다. 사람에 따라 '너무 도덕적이고 교훈적이지 않은가'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조언이 결코 고리타분하거나 뻔한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인생을 조금 더 앞서 살았던 선배가, 담백하고 솔직하게 후배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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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늦지 않았어'라며 용기를 얻고 싶다면,

자꾸 비교하게 되는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한동일 저자의 <라틴어 수업>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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