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평소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제게는 그런 책입니다. 올 초에 처음 읽었을 때,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시 읽었을 때, 각기 다른 의미로 좋았던 책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힘차게 한 해를 보내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에 도움이 되었고, 최근 다시 읽었을 때는 인생의 마지막을 상상해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죠. 처음 읽었을 때와 또 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은 이어령 교수님이 병마와 싸우는 중에 하신 여러 생각을, 김지수 기자와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읽으며 내내, 마치 한국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우연인지 김지수 기자 역시 선생을 매주 화요일에 만나서 인터뷰합니다). 문장 하나하나 의미 있고 주옥같은 이야기가 많았으며, 죽음에 직면한 스승의 삶과 인생에 관한 통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 몇 가지를 공유합니다.
#. 글쓰기에 관하여
글 쓰는 사람은 매번 패배한다네. …… 완벽해서 이거면 다 됐다, 싶었으면 더 못 썼을 거야. …… 글을 쓴다는 것은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가 환하게 웃었다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다음이 있어. 죽음에 대해 쓰는 거지.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더 갈 수 있다네
이어령 교수님 같은 석학도 매번 패배한다고 느낀다는 말에 절로 겸손해졌습니다. 고작 이 정도 써보고,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논하는 것도 오만이라고 생각했고요. 매번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한다는 말에, 저 또한 계속 시도할 용기를 얻습니다. 또한, 글 쓰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도 그에 대해 쓸 수 있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죽음이 다가온다면 마지막까지 그것에 대해 쓰지 않을까.' 생각해왔거든요. 글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삶을 객관화하여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도 고통을 '관찰'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요. 자신이 고통을 겪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only one'에 관하여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하나 내 머리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은 흔치 않거든. …… 머리는 자기 것이지만 생각은 남의 것이니 문제지…… 무엇이든 만장일치라면 그건 한 명과 다름없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그게 어떻게 인간인가? 그냥 무리 지어 사는 거지. 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알고 보면 가까운 사람도 사실 남에겐 관심이 없어요. 허허…… 남은 내 생각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도 '남이 어떻게 볼까?' 그 기준으로 자기 가치를 연기하고 사니 허망한 거지.
'지금 저 사람이 피를 흘려서 얼마나 아플까?' 그건 자기가 아픈 거야. 자기 마음이 아픈 거지.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우리는 남과 다른 의견을 얘기하는 것에 주저하거나, 나만 다르면 혹시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선생은 남과 다른 게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무리 지어 집단주의에 물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죠. 또한 타인과 나는 결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타인과 구별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내 주관대로, 생각대로, 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내 머리'로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은연중에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고, 나만 이상한 게 아닐까 염려하게 되거든요. 나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존재이며, 누가 뭐라든 나의 길을 간다는 우직한 태도는, 'only one'이 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 감사에 관하여
사형수한테는 쓰레기도 아름답게 보인다네. …… 내가 곧 죽는다고 생각하면 코끝의 바람 한 줄기도 허투루 마실 수 없는 거라네. 그래서 사형수는 다 착하게 죽는 거야. 마지막이니까.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종교가 있든 없든, 죽음의 과정에서 신의 기프트를 알고 죽는 사람과 모르고 죽는 사람은 천지 차이예요.
안 태어나는 게 행복했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났으니 빨리 사라지는 게 낫겠다, 이렇게 반출생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건 무의미해. 제일 쉬운 게 부정이에요. 긍정이 어렵죠. …… 지금 죽음 앞에서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 다 부정해도 현재 내가 살아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숨을 쉬고 구름을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사형수에겐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구절을 읽고, 문득 어릴 적 이사 가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평소에는 일상적으로 거닐던 동네도, 이사 가는 날에는 특별한 풍경으로 느껴집니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도 삶이 마지막이니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겠죠. 또한, 선생은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들이 선물이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기적이라는 말이죠. 우리는 일상의 당연함에 속아 종종 내게 주어진 것들을 경시하곤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것들 중 당연하게 주어진 건 없고, 모든 것은 기적과도 같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일상을 감사하는 태도로 사는 것과 불평하며 사는 것, 그 누구도 아닌 내게 달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엔딩 크레딧에 'the end' 마크 대신 꽃봉오리를 놓을 것이라는, 그럼으로써 끝인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구든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라는 선생의 말이, 비록 지금 선생은 떠났지만 후대로 하여금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내포한 말로 느껴져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세워주었습니다. 끝이 마냥 아쉬움과 애절함은 아니며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성숙함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금 곱씹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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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면,
올 한 해 이룬 것이 없다고 느껴져 자책감이 든다면,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이 많아진다면,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얼마남지 않은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