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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Aug 27. 2024

애덤 스미스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애덤 스미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그동안 애덤 스미스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경덕 저자의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를 읽고난 뒤, 그 얕은 깊이 마저, 꽤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 뒷편에 '애덤 스미스는 누구보다 널리 알려졌으나 그만큼 잘못 알려져 있다'라고 서술되어 있기도 합니다.


 책의 부제가 '다시 보는 『도덕감정론 『국부론일만큼, 애덤 스미스의 대표적 저서인 두 책을 중간중간 인용한 부분이 많습니다. 책을 읽으며 그의 생애에 대해 몰랐던 측면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요. 지금껏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 첫번째 오해) 애덤 스미스는 부를 숭상했다?

부와 높은 지위를 누리는 즐거움은 대단히 크고 아름답고 고귀한 것처럼 느껴지며 그에 대한 상상은 우리의 뇌리를 강하게 때린다. 그것은 모든 노고와 근심을 감수할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사람들이 계속해서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만이다. …… 애덤 스미스는 부 자체에 대한 도덕적 판결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빈자에 대한 경멸과 무시는 도덕적 타락임을 분명히 한다. 지혜롭고 덕 있는 이들이 받아야 할 존경과 찬사는 흔히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이들에게 주어진다. 어리석고 악한 이들에게 향해야할 경멸은 종종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세상에 <국부론>이 더 알려져있으나, 정작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이 더 뛰어난 책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스미스는 생의 마지막 몇 년을 <도덕감정론> 개정에 바칩니다. 경제보다 도덕 문제를 탐구하고 조언하는 데 남은 에너지를 쓰고 싶어했지요. 그가 마지막까지 <도덕감정론>의 개정판 작업에 매달렸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부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보다 도덕적 기초를 밝히는 것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상업사회의 문제를 냉소하기 보다 그 본질을 꿰뚫어보면서 현실적인 해법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부에 대한 갈망보다는 덕성에 대한 열망을 고취하려 했고요.


 

#. 두번째 오해)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하며 자유방임을 믿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로운 시장을 중시했다. 그러나 그가 자유방임을 주창하며 정부의 역할을 무시했다고 보는 것은 오해다. 그는 자유방임을 믿지 않았다. …… 오히려 그것을 주장한 중농주의를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했다. …… 정부는 시장이 잘 못하는 일도 해야 한다. 모든 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규제를 없애고 필요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 경제학자들은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언제나 경제를 최적의 균형 상태로 되돌려준다는 것은 망상이다.  


 그동안 애덤 스미스가 자유방임을 강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알아서 돌아가게 하는, 시장의 마법으로 작용하므로, 정부의 개입을 지양하는 의견을 낸 줄 알았죠. 허나, 그는 무질서한 방치가 아닌 적절한 정부의 개입을 주창했다고 합니다. 모든 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닌, 필요한 규제는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죠. 또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각 개인들의 노력이 사회에 부를 일으키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국부론의 구절 또한, 공감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의 노력을 포함한 자유로운 시장의 힘을 믿되, 적절한 정부의 역할 또한 필요하다고 한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 세번째 오해) 애덤 스미스는 빡빡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외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 자라 어른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는 자신의 얼굴이 아름다운지 찌그러졌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이 아름다운지 찌그러졌는지, 혹은 자신의 성격이 어떤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적정한지, 단점은 없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불운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은 그들의 불행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은 태도다. 우리의 동료가 느끼는 기쁨에 영향을 받지 않은 듯이 보이는 것은 정중함이 부족한 태도일 뿐이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 진지한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몰인정한 태도다.


 특히 <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면모를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을 강조하며, 공감을 특히 중요시합니다. 더불어 그가 노예제를 비판했다는 것 또한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노예제가 당연했던 1750년대 후반에 그는 자유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며 노예제를 비판했습니다. 이는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보다 한 세기 이상 앞선 것이지요. 그로 말미암아 애덤 스미스가 생각보다 유연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에게는 관대해야하며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엄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근거 없는 칭찬에 기뻐하는 것이 얄팍한 경박함과 나약함의 증거라는 말은 그의 소신을 잘 대변해줍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딱딱하고 재미없으면 어쩌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고, 그동안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되어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애덤 스미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많이 깨졌습니다. 역시 어느 사람이나 사물, 현상을 한 가지 잣대로만 보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지요. 항상 단편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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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도덕'의 제대로된 기준 정립이 궁금하다면,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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