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 출간 이후로 꾸준히 읽히는 작품입니다. 얼마 전, 영화로도 개봉했던 바가 있습니다. 저는 한창 '외국에 나가고 싶어 병'을 앓던 몇 년 전 처음 읽었었고, 이후 잊고 지내다가 영화로 개봉했다는 소식에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분명 그때도 읽어보았는데, 이번에 읽으니 그때와는 또 다르게 느껴져 신기했던 경험이었습니다.
몇 년 전 읽었을 때는 책 제목처럼 한국이 싫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것들이 마음에 안 들었지요. 여행지에서 느끼는 외국 생활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특히 선진국에 나갔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숨이 턱턱 막혀서, 여기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짓는 외국에서와 다르게, 우리나라는 타인에게 미소조차 지을 여유 없이 각박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 눈치도 많이 봐서, 남과 다르게 튀어 보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싫었지요. 좁은 땅덩이에서 과열된 경쟁을 하며 사는 것도 숨 막혔습니다. 어디서든 '빨리빨리', 여유 없는 사람들은 턱턱 닫히는 문을 잡아주지 않는 것은 물론, 마트 계산대 앞에서도 다닥다닥 줄을 서서, 사적 거리를 정확히 지키는 서양 사람들과 비교된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도 여러 가지 이유로 환멸을 느껴, 호주로 떠나기로 결심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시드니에 도착한 직후부터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공항에 도착한 이후 그녀의 불찰로 차 사고가 날뻔했는데, 화낼 줄 알았던 운전자가 오히려 '아 유 오케이' 괜찮냐 묻고, 하늘을 향해 과장되게 감사인사를 하는 모습에 그녀는 감동을 받지요.
책을 읽으며 그 외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과 인생의 가치관에 대하여]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내가 의대 가서 성형외과 의사 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까? 아닐걸? 10년 뒤에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이 구절에 공감이 되었던 건, 대학 전공을 선택했던 경험 때문입니다. 단순히 적성보다는 취업이 잘되겠다는 생각에 택했던 전공은, 이후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시대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에, 전망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이 일을 해서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 이전에,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 나왔던 대사가 기억나기도 합니다. '방향이 틀리면 속도도 의미 없다'는 말이었는데, 어떻게 빨리 갈지 고민하기보다, 내게 맞는 방향을 알고, 설정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물론 생계를 생각하면 당장의 밥벌이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게 맞는 길,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아직 인생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건, 지금까지 이룬 성취들이 온전히 제 힘으로 이뤄낸 것이라는 겁니다. 공들여서 자력으로 해냈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주변 도움이 아닌 나의 힘으로 달성하면, 물론 당시에는 힘든 부분도 있지만, 내부에 어떤 보이지 않는 근력이 길러지는 것 같습니다. 같은 시련이 오거나 그보다 더 큰 고난이 닥칠 때 다시 한번 산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주지요. 가끔 주변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산을 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홀로 헤쳐감으로써 내면이 단단해지고 성장했겠구나, 생각하면 좀 더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행복에 관하여 ]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봤어. 나는 먹는 거에 관심이 많아서 맛있는 음식이랑 과자를 좋아하지. 또 술도 좋아해. 그러니까 식재료랑 술값이 싼 곳에서 사는 게 좋아. 그리고 공기가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드는 동네가 좋아. 또 주변 사람들이 많이 웃고 표정이 밝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 매일 화내거나 불안해하는 얼굴들을 보면서 살고 싶지 않아. ……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계나의 행복론을 읽으며, 나의 행복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녀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 또한 거창하고 화려함보다는 소소하고 편안한 행복을 추구하는 쪽입니다. 평생 글을 쓰며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고, 생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 눈을 그리 신경 쓰는 편이 아니므로, 화려한 명품이나 치장보다는 실속 있는 소비와 소소한 행복을 추구합니다.
책에서 얘기한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기억납니다. '자산성 행복'이란 뭔가를 성취한 기억으로 조금씩 오랫동안 행복을 느끼는 것이고, '현금흐름성 행복'은 어떤 순간 짜릿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죠. 제 경우, 글을 쓰며 이뤄낸 성취로 '자산성 행복'을 느끼지만, 순간순간의 '현금흐름성 행복'도 챙기며 살고 싶습니다.
몇 년 전 책을 읽을 때는 '한국의 안 좋은 점'에 주로 이입되어 소설을 읽었다면, 이번에는 해외 살이의 어려움에 좀 더 공감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그 간의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해외 살이가 마냥 녹록지 않음을 알게 되기도 했고, 어디든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며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싫어서 틈만 나면 해외를 나가곤 했던, 그래야 숨통을 트였던 이전과 달리, 요즘은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디든 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국의 장점 또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를테면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것이랄지, 치안이 좋아 새벽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것, 카페에 노트북을 두고 다닐 정도로 소매치기 위험이 적은 것, 언어 소통이 자유로운 것, 편리한 배달 시스템, 빠른 행정 처리 등 한국 살이의 장점은 어마어마합니다.
책 마지막의 작품 해설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해설에서 문학평론가는,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라고 말합니다. 자유를 영위하면서 사는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던 셈이라고 하죠.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탈출을 꿈꾸고 결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멀리서 보면 축사'라는 표현이 충격적이면서도 공감되었습니다. 지금의 사회 시스템에서 고분고분 살아가는 것이 일종의 체제 순응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탈출을 꿈꾸고 결단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 역시 그렇기에 꾸역꾸역 현생을 살아내는 게 아닐까요?
.
.
.
한국이 싫어 이민을 생각한다면,
이민의 현실을 알고 싶다면,
책 <한국이 싫어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