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친구가 생각났다. 퇴근 중이라는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든 철없던 모습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금까지…
내 기쁜 순간도, 슬픈 순간도,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까지도 다 지켜본 너잖아.‘
그래서인지 너와 통화하는 시간이 참 편해.
힘든 이야기를 해도 괜찮고, 기쁜 이야기는 더 기쁘게 나눌 수 있었다. 심지어 전화기 너머로 내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채는 너였어.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야, 우리 예전에 이랬었잖아!” 추억을 꺼내며 한참을 웃고, 또 어떤 순간에는 울컥하기도 했다.
내가 요즘 글을 쓰는 이야기를 하자 너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진짜 너 작가 된 거 너무 멋있다! 책 나오면 꼭 사인해 줘 ”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그런 말 했었지? 나는 꼭 이름 석 자는 꼭 남기고 싶다고, 그리고 우리도 꼭 그러자고.”
그때 우리는 ‘확언’이 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그런 다짐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로 그때의 다짐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어.
네가 내게 대견하다고 말해주었고, 나도 너에게 똑같이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고, 서로를 보며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 주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너는 내게 부모님이 계실 때 잘하라고 했었고, 내가 힘들 때도 항상 내 곁에서 말없이 있어 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선의든 악의든 내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살아보니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더라. 하지만 너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다.
내 허물도 덮어주고, 조용히 곁을 지켜주던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또다시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서로 비밀을 지켜주겠다며 다짐했던 순간들, 아무 의미 없는 농담에도 배꼽 잡고 웃던 날들, 그리고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 몰래 맥주를 사다 마시던 철없던 시절까지.
“야, 그때 우리 진짜 웃겼지?”
“그러게 말이야. 근데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싫어.”
“그래도 난 너랑 함께했던 그 시절이 좋아.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는 모든 게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점점 진지해졌다.
일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어릴 때는 모든 게 쉬울 줄 알았는데, 이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야 오늘이 있으니까..
전화 한 통으로, 너와 나는 잠시나마 고단한 일상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깔깔 웃는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 좋다.
“근데 있잖아.”
“응?”
“그래도 너 열심히 살고 있고, 대단한 것 같아. 가끔 널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네 목소리가 밝아서 다행이다.”
“그래, 다행이네… 란아, 그래도 우리 꽤 잘 살고 있는 거야. 힘내자”
목소리 속에 미소가 묻어났다. 완벽하지 않아도, 전화기 너머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며 다독이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