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자리에서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린 질문입니다.
누구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시간은 묻지도 않고 흘러갑니다.
나 역시 어느새 이 나이가 되어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떤 순간을 견뎌냈고, 또 어떤 시간을 흘려보냈을까.
돌이켜 보면 잘 살아낸 날도 있었지만,
어리숙하고 미련했던 날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왜 그 순간 더 지혜롭지 못했을까,
이따금 후회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분명하게 느낍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반성은 미래를 바꾼다.”
지나간 날들을 자책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잘 살아내고 싶습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남은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살아야 정말 잘 사는 걸까?’
시간이 많이 남은 듯해도,
그 끝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일지, 내일 일지, 아니면 아주 먼 훗날일지…
삶은 언제나 예고 없이 우리를 시험합니다.
예전, 점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점쟁이는 제게 말했습니다.
“복부 초음파는 꼭 보세요. 이상 소견이 나올 거예요.”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친한 동료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하게 되었고,
늘 하던 대로 위내시경과 피검사만 하려다
억지로 초음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뭔가 이상하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비장 동맥류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비장이 터지기 직전, 생명과 직결된 꽈리가 무려 세 개나 있었습니다.
서울대 병원 의사는 말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급사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고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그 순간, 그 점쟁이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어떻게 알았던 걸까요?
그저 우연이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저를 다시 살려내신 걸까요?
“신은 기적을 만들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기적을 알아보게 만든다.”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때의 일은,
제 삶에 다시 한번 ‘살아낼 이유’를 주시기 위한 신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천국보다 아름다운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지옥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너무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게 무서움에 흘렀는지 모릅니다.
‘나도 만약 저기 있다면 어떡하지?’
잘 살아내지 못한 내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곳에 내가 있다면,
내 사랑하는 가족은?
우리 아이는?
내 친구들과 지인들, 내가 마음을 준 사람들은?
그 순간 나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천국에 있고 싶다.”
그 감정 앞에서 나는 무너졌고,
또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착한 사람들의 목적지가 아니라,
매일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의 길 위에 있다.”
그렇기에 오늘도 마음을 다잡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 한마디,
지친 이에게 내미는 작은 손길,
그 모든 것이 천국을 향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누구보다 천사처럼 웃어야 할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따뜻한 곳이길 바랍니다.
나는 바랐습니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그 어떤 지옥도 아닌
작고 평범한 천국이 되기를.
오늘 하루, 아이의 웃음소리가
이 땅의 축복처럼 퍼지기를 바라며
나 역시 그 아이의 삶을 지켜주는 한 사람으로,
더 따뜻하게, 더 단단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멋진 날’이 왔을 때,
조용히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충분히 사랑했고,
충분히 용서했고,
무엇보다,
나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