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전 조용히 오스카 여우주연상의 윤여정 님이 귀국했다. 수수하게 항공점퍼를 입고 입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녀가 10년 전에 내가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내었기에 더욱 개인적으로도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녀였다면 그런 대담한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윤여정 님의 선택
윤여정 님은 1973년 (내가 태어난 해) 잘 나가던 배우의 꿈을 접고 가수 조영남과 결혼하면서 도미했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동안 배우자는 외도를 하게 되고 그녀는 1985년 결혼 13년 만에 두 아들을 데리고 이혼을 하게 된다. 그녀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다시 연예계에 복귀선언 후, 지금 같아서는 그런 엄마로서의 용기가 가상하다고 생각해서 배역을 더 주었을 것 같은데 당시 보수적이던 한국 사회에 이혼이라는 것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있어서는 마약 복용과 같은 수위 높은 사고를 저지른 후 복귀할 수 있는지와 동급으로 생각될 만큼의 사건이었기에 그녀의 복귀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 인터뷰를 보니 지금 혼자인데 불편한 건 없는가 등 그녀가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안 좋은 시선들이 더 많았고 아무도 그녀에게 역할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다 지난 이야기이니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얼마나 힘들었을지 혼자도 아니고 아들 둘을 키워야 하는데 당장 돈은 필요하고 할 수 있는 건 연기인데 아무도 부르지 않고 정말 그런 상황을 이겨냈다는 것이 대단하다.
지인들의 말대로 그녀는 본인의 선택에 용감히 맞섰고 책임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주 작은 배역도 거절하지 않고 맡았다, 그녀가 맡은 역할을 대부분 여배우들이 꺼리던 배역들이었지만 그녀는 아이들과 살아야 해서 더 절실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가장 절실하게 연기할 때가 언제인가요?
돈이 필요할 때요.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설사 그랬더라도 그리 대답할 수는 없었을 거다. 남들에게는 내 고통과 내 현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마음인데 윤여정 님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그땐 감추고 싶은 현실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녀를 더 높게 만드는 점이 되었다.
실제로 우리 모두 돈 때문에 일한다. 이런 노래가 있다고 한다.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 우리는 단지 돈을 위해 한다. 하지만 대부분 아니요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돈 좀 못 벌면 어때요. 이런 식으로 자기가 하는 일이 헌신하고 희생하는 일이라는 걸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치고 정말 돈 없는 사람은 못 봤다. 여유가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할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거 아닐지. 그녀는 돈이 필요해서 절실하여 열심히 일을 했다. 잘해야 다음에 또 불러주니까.
그런 그녀의 솔직함은 현재 그녀를 만든 힘이 되었고 그녀는 용감하게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나리를 촬영하러 미국에 갈 때도 오히려 젊은 배우 한예리는 비행기 속에서 내가 이 영화 촬영하는 게 맞나 고심할 때 그녀는 자신 있게 현실에 부딪었다. 아마도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녀의 과거의 모습이 그녀를 그리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이에 상관없이 늘 당당하고 솔직함이 빛나는 그녀는 인생의 생존자로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웠댜. 나보다 2살 어린 큰 아들은 콜롬비아 대학을 나와 ABC뉴스팀에서 일할만큼의 재원이라고 한다. 틱장애로 고생했던 작은 아들은 역시 명문인 뉴욕대 나와 외국계 힙합 레코드사에서 일한다고 하니 아들 둘 위해 닥치는 연기 하신 보람이 있으실 것 같다. 그 당시 용감한 선택인 이혼을 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신 윤여정 님 정말 존경합니다.
나의 선택
그렇다면 나는? 나 역시 10여 년 전 윤여정 씨처럼 이혼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거의 2년여를 남편과 따로 지냈는데 그때 나는 아들이 대수술로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나는 대학원 논문 준비 그리고 마지막 임상치료 중이었다. 나는 사실 이혼을 생각만 했지 결국 선택하지는 못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이유는 솔직히 아픈 아이를 아빠 없이 혼자 키울 자신도 없었고 (아들이 아니었고 아픈 아이가 아니었음 이혼했을지도 모른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내가 이혼녀로서 아이들의 선생님이 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남편 역할을 못해도 아들에게는 아빠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하는 일 도 있었고 윤여정 님에 비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남편과 따로 있으면서 수업을 더 늘려서 수입에도 별 걱정은 없었다. 단지 그냥 내가 나와 맞지 않는 남편 때문에 힘든 것 그리고 나를 무시하는 그런 말과 행동을 보고 듣기 싫었던 것이다. 그냥 떨어져 살자. 안 보니 좋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극단적인 선택은 차마 하지 못했다. 윤여정 님은 그런 삶은 그 당시 생각도 못했고 그저 이혼하는 것이 본인이 사는 것이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나는 결국 별거 후에 남편이 집으로 쉽게 돌아왔고 (지금도 미스터리임) 지금은 그냥 남매 같은 부부로 산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아들에겐 아빠가 필요하다. 난 내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지만 100% 만족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할 수 없는 선택, 다른 사람은 가능한 선택일 뿐. 나는 윤여정 님이 될 수 없고 그때 이혼을 했다면 지금? 모르겠다. 단, 나 역시 그때 그 힘들었던 시기를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무사히 보냈다. 아이는 병원에서 잘 퇴원했고 나는 석사학위를 땄다. 그리고 그때 경험했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 안에 웬만한 어려움은 쉽게 넘기는 큰 힘이 생겼다. 이혼은 못했지만 인생에 있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한 해 두해 성장하는 나를 본다. 매일매일 잘 있었나요 내 인생의 "인생에 필요 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말이 와 닿는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