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서, 그리고 글쓰기 입문기

언제부터 어떻게 책, 독서,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었나요?

by 박재


어릴 때 읽은 책이라곤 [세계위인전집]과 [그리스로마신화] 뿐이었다. 강감찬 장군, 간디, 아인슈타인, 칭기즈칸, 헬렌 캘러, 왕건, 파브르, 정약용... 등이 기억난다.


조금 더 자라서는 '스크린게이트'라는 비디오 만화책방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알바를 했었다. 번 돈으로 [은혼], [슬램덩크], [짱], [이누야샤], [달빛조각사], [열혈강호], [원피스], [드래곤볼], [나루토], [블리치] 등을 읽었다. 당시 전단지를 돌리면 적게는 칠백원, 많게는 이천원을 받았다.


그러다 중학생 때 태권도 시범단에 들어가면서 그나마 읽던 만화책과도 담을 쌓게 되었다. 책이라 불릴만한 종이뭉치와 완전히 멀어졌다. 신기한 것은 운동부라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시험을 치면 비교적 국어 점수가 가장 높았다. 이후 국어라는 과목은 지속적으로 나에게 적지 않은 자신감을 주었다.


대개 남자애들이 그렇듯, 점심 시간에 축구하고 종례 끝나면 축구하고, 야자 째고 또 축구하며, 열심히 움직였다. 어디 앉아서 가만히 뭘 들여다 보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까불며 놀다가 지금의 아내인 여자친구를 만났다. 아내는 문구류를 좋아했다. 볼펜, 샤프, 공책, 스티커, 마스킹테이프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보는 사람이었다. 아트박스나 핫트랙스 가는 것을 즐거워했고, 책을 무려 제 돈 주고 사서 읽는 사람이었다.


책을 제 돈 주고 산다는 것은 내게 굉장히 낯선 소비였다. 그러나 책을 읽는 여자를 만나 같이 서점에 머물다 보니 나도 한 권 두 권 마음에 드는 표지와 제목의 책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책을 살 때 한 권 정도 나도 슥 껴넣어 그녀의 돈으로 구매하기도 했다. 물론 읽진 않았다. 200페이지 300페이지 되는 책이 갑자기 읽혀질리가 없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 책을 좋아하는 것과 독서를 좋아하는 것은 생각보다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읽지 않고 사 모은 책이 꽤 쌓일 즈음인가. 자연스럽게 책이 이젠 읽혀지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아주 흠뻑 젖게 되었다. 책을 좋아했다가 독서가 좋아지고, 밀리의 서재 구독도 아내가 하자 해서 했다.


아내는 옳았다. 생각보다 전자책도 잘 맞아서 이북 리더기까지 샀다. (괜한 저항감은 날려보라! 아날로그는 아날로그고, 디지털은 디지털이었다. 그뿐이었다.) 어쨌든 전체 독서량은 늘어나고, 읽는 것 이상으로 글 자체가 좋아졌다. 글이 좋으니 직접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요즘엔 필사도 조금씩 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묘사와 표현,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오늘 하루 자국 남긴 감정을 연말에 받았던 스타벅스 초록 다이어리에 쓰고 있다. 업무용 다이어리지만 뭐 어떤가. 손이 잘 가야 한 번이라도 더 쓸테니.


엊그제는 쿠팡에서 만원짜리 만년필 하나도 장만했다. 구색을 갖춰주니, 마치 오 년 치의 필사 내공이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 독서, 그리고 글쓰기까지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내를 만나고서다. 운동을


모두 다 아내 덕분이다.


이 말 하려고 이렇게 길게 적었다면, 믿어줄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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