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정월대보름, 시라도 한 편 써야겠죠?

산문시 좋아하나요? 날짜를 보니 정월대보름인데, 반고흐 월출이 생각납니다

by 박재

비추기만 하면 다인가 (산문시)


반 고흐의 월출을 보았는가. 1889년의 달은 기름진 빛을 흘렸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곡식은 단단하게 여물었다.
그가 올려다본 달은 풍요로웠고, 따뜻했다.


하지만 우리가 올려다보는 달은,

그저 싸늘한 빛을 뿌릴 뿐이다.

도시는 검게 가라앉았고, 거리는 적막하다.

무거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어떤 권력은 무너지고, 어떤 생명은 스러졌다.


그러나 달은 변함없이 떠 있다.
백 년 전 고흐의 들판 위에도,

백 년 후 이 불안한 밤하늘 위에도.
똑같이 둥글고, 똑같이 차갑게.


누군가는 풍요의 달을 올려다보고,

누군가는 비탄의 달을 외면한다.
밝은 저 달은, 그저 달일 뿐인가.

하늘에 걸려 있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한가.


길을 비춰주는 빛에 고맙다.
그러나 이번 겨울엔,

발등이 아니라 마음을 덥혀줄 빛이 필요하다.
온기 없는 빛을 받으며,

나는 다시 묻는다.


비추기만 하면, 다인가.




Is It Enough Just to Shine?


Van Gogh’s moon spilled its golden light,
washing the fields in amber,
ripening the crops into firm fullness.
The moon he looked up at—warm, abundant, alive.


But the moon we see today
merely casts a cold, indifferent glow.
The city sinks into darkness, the streets are silent.
As the heavy wind drifts past,
some powers collapse, some lives fade away.


Yet the moon remains unchanged.
Above Van Gogh’s golden fields a hundred years ago,
above this restless night sky a hundred years from now—
always the same, always distant.


Some gaze up at a night of abundance,
some wander through a night of sorrow.
But is the moon just the moon?
Is it enough simply to hang in the sky?


The light that guides our steps is a kindness,
but this winter,
we need more than a glow upon our feet—
we need warmth in our hearts.

Beneath a light without warmth,
I ask again,
Is it enough just to shine?



비추기만 하면 다인가 (정형시)


고흐의 달은 기름진 빛을 흘리고,

들판엔 풍요가 넘쳐흐르는데,

우리가 올려다본 달은

그저 싸늘한 빛만 쏟아낼 뿐.


도시는 검게 내려앉고,

거리마다 무거운 바람이 스친다.

어떤 권력은 무너지고,

어떤 생명은 스러졌다.


그러나 달은 변함없이 떠 있다.

백 년 전 고흐의 들판 위에도,

백 년 후 이 불안한 밤하늘 위에도,

달은 똑같이 둥글고, 똑같이 차갑다.


누군가는 풍요의 밤을 올려다보고,

누군가는 비탄의 밤을 지나간다.

그럼에도 달은, 그저 달일 뿐인가.

하늘에 걸려 있으면 그걸로 끝인가.


어두운 밤을 밝혀주니 좋다만,

달빛이 조금쯤 따뜻할 순 없을까.

발을 비춰주는 빛도 고맙지만,

이번 겨울엔 마음을 덥혀줄 빛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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