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게 현실인가요?
#12
“아 이제 집 어떻게 가!”
내가 14살이었을 때다. 당시 나는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친구랑 둘이 큰맘 먹고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가기로 했고 우리는 인천 부평으로 향했다. 저녁이 되었고 환승을 위해 구로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갈아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지 못한 탓에 부리나케 플랫폼으로 내려갔지만, 막차가 눈앞에서 막 떠나가고 있었다. 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핸드폰을 두드렸고 친구는 지쳤는지 앉아서 이제 어쩌냐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예쁜 언니들 ~ 어디 가?”
그때 술에 취한 아저씨(이하 취객이라 칭함) 한 분이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친구는 귀찮다는 듯 퉁명스럽게 ‘누구신데 그런 걸 묻냐?’고 반문했다. 낌새가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대답하지 말라 하곤 친구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 게이트를 통과했다. 취객은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보여주며 본인이 공무원이라 말하더니 교통카드나 전철 표도 없으신지 양손으로 짚고 뛰어넘어 나오시는 게 아니겠나? 황당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택시를 이용하진 않을 건데 어떤 술에 취한 아저씨가 따라와서요. 죄송하지만 저희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구로역 출구로 나가니 호객하는 택시가 즐비해 있었다. 나는 곧장 택시 기사님들께 도움을 청했고 다 거절당했다. 하긴, 바쁘실텐데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을 도와주기란 쉽지 않으셨겠지. 한데 취객이 내려오는 터라 시간이 없었다. 빨리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때 대각선에 보이는 환하게 불 켜진 김밥집 간판! 어둠침침한 길을 뚫고 경보로 걸어갔다.
“죄송한데요. 어떤 술에 취한 아저씨가 저희를 따라와서 그러는데 저희 여기 잠깐만 앉아있다가 나가도 될까요?”
아담한 크기의 김밥집은 부부이신 사장님 두 분이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두 분은 주문할 게 아니라면 나가라셨다. 망연자실하고 나가려는 차에 취객이 김밥집으로 들어와 문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았다. “쟤네(우리) 좀 데려갈게요.” 우리는 뒷걸음질로 매장 가장 안쪽 구석까지 가 옴짝달싹 못 하고 따라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남자 사장님은 주문 안 할 거면 다 나가라셨고 취객과 한참 얘기가 오가던 중 홧김에 테이블을 엎은 취객 덕에 영업 방해로 신고되어 우리는 지구대로 갈 수 있음에 안도했다.
같은 지구대, 한 공간 안에서 진술받는 우리와 취객, 그리고 부부 사장님. 남자 사장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가 위험해 보여서 매장에서 보호해 주고 있었다 진술하고, 취객은 형이라는 자를 불러와선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쟤네는 술집 여자들이고 본인을 유혹했다고 진술하는 모습에 기가 찼다. 이게 세상인가 싶었다. 우리는 구로경찰서 강력1팀에서 늦은 새벽까지 조사받고 나서야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