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N잡러 보건교사입니다.

by 보건교사 한티

나는 왜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긴박한 순간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들을 꿈꿨었다. 상상한 나의 모습은 '가운을 딱!', '청진기를 목에 딱!' 얼마나 프로페셔널해 보였던지. 간호사가 되면 최고의 슈퍼우먼이 되는 줄 알았다.


그치만 현실은 달랐다. 임상을 바라보니 '이런 상황~ 쉽지 않겠는걸?' 생각이 절로 들었다. "탈 임상을 해야겠다!" 바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근무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이쁜 아이들과 소통하며, 학생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교사가 되어야지" 부푼 꿈을 안고 임용을 준비하고,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학교에 첫 발을 내디디자 마자 나는 알게 되었다. 학생들의 건강만을 돌보는 것이 보건교사가 아니라는 것을.

응급처치는 기본이고, 학생들의 예방접종부터 학생들의 건강검진, 건강 상담, 학생 복지 생리대 비치, 흡연예방 교육, 성교육 등등... 너무 많은 업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몰아치는 업무들을 해내고 나면,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간호사가 맞는걸까?'


어느 날, 학교에서는 진로수업을 해달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대학교 모집요강을 찾아보게 하고, 함께 진로 탐색을 도와주는 나는 그렇게 진로 교사가 되어 있었다.


또 어느 날에는 흡연이 적발되어 학생 대상 금연교육을 해달라고 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애들아~ 흡연 하면 안돼. 우리 이런식으로 금연해보자"하며, 금연의 필요성을 교육하는 나는 그렇게 금연예방교육강사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에는 교직원이 보건실 문을 두들겼다. 똑똑- "선생님 동료 교직원이 성적인 말을 해서 너무 힘들어요", 나는 "아이고 그러셨군요~"라며, 교직원의 성고충을 들어주는 상담원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 저 진로가 의료계통인데 생활기록부에 적을 탐구 활동 지도교사가 되어주세요"라고 사슴같이 빛나는 눈빛을 한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또 그렇게 아이들의 진로 탐구 지도교사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아니, 솔직히 여전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냥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N잡러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역할의 제가 필요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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