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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 Fontes Nov 18. 2015

모비딕

모비딕



책은 읽는 시각과 관심사에 따라 주는 교훈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꾸준히 무거운 주제를 안겨주고 또 영화로도 감명을 주었던 허먼 멜빌이 쓴 ‘모비딕’(백경)도 그러한 책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혹자는 에이허브 선장과 모비딕이라는 두 개의 카리스마가 격돌하는데 에이허브는 인간을 대표하고 모비딕은 자연을 대표하여 인간과 자연의 갈등에 대한 투쟁을 보여 준다는 해석을 하고, 또 혹자는 잘못된 리더 에이허브 선장 때문에 모두가 죽어야 하는 리더쉽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복수를 위해 달려가는 집념을 넘어선 집착을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처음은 ‘내 이름은 이슈마엘이다’ 라는 독백으로부터 시작된다. 19세기 미국 낸포트항에서 주인공 이슈마엘이 일자리를 구하다가 식인종 원주민이 사는 어느 섬나라의 왕자라는 쿠이켁을 만난다.  이슈마엘은 식인종 이라는 여관주인의 말에 불안에 떨지만 과묵하고 무뚝뚝하지만 인정이 많고 의리가 있는 쿠이켁과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다가 피쿼드호라는 포경선의 선원 자리를 얻게 된다. 사실 쿠이켁의 작살 솜씨를 보고 반한 고용인 덕분에 이슈마일은 그냥 덤으로 얻게 된 자리이지만, 그들은 피쿼드호에 몸을 싣고 고래를 잡기위해 바다로 나가게 되고 그때부터 그들의 바다생활이 시작된다. 


이슈마엘은 배에서 복수심에 눈이 먼 한 남자, 에이허브를 만난다.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후 오직 복수 하겠다는 일념에 불타 복수의 화신이 된 에이허브 선장은 다른 모든 상황은 무시한 채 오로지 복수에만 집착하게 된다. 


‘나는 악마가 붙은 미치광이다. 이제 나는 예언한다. 내 다리를 자른 놈의 몸통을 잘라버릴거라고...’


그에게는 선원들의 건강과 다른 고래잡이는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런 성격으로 에이허브 선장의 복수심을 막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선장의 고집과 집념에 굴복하고 만다. 여기서 복수심에 불타 이성을 상실한 에이허브 선장의 광기어린 모습과 선원들에게 겁쟁이 취급을 받으면서 모두의 안전을 위해 선장을 막으려는 스타벅과의 갈등과 대립이 보인다.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태평양으로 끝없이 ‘모비딕’ 만을 추격하는 에이허브 선장. 결국 긴 항해 끝에 일본근해에서 ‘모비딕’을 직접 발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일간의 사투... 


첫째날 아침, 거대한 몸집의 ‘모비딕’은 자신을 공격하는 에이허브 의 보트를 박살내고... 선원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둘째날 정오, ‘피쿼드’호의 포경선원들이 흰고래 ‘모비 딕’에게 작살을 던지며 공격하지만 ‘모비딕’의 반격으로 작살에 연결된 밧줄들이 뒤엉키며 세 척의 보트가 모두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다에 빠지고 포경선원들과 에이허브 선장은 ‘피쿼드’호에 의해 간신히 구조된다. 이제 남은 것은 본선인 ‘피쿼드’호와 몇 명의 생존자 뿐... ‘지옥 한 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벹어 주마... 너와 함께 나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겠다’


셋째날 저녁, ‘모비 딕’에 대한 선두 공격에 나선 에이허브 선장은 ‘모비 딕’의 옆구리에 작살을 꽂지만 맹렬하게 반격하는 ‘모비 딕’에 의해 ‘피쿼드’호가 침몰되어 버리고 만다. 에이허브 선장은 사투 끝에 작살로  ‘모비딕’을 명중시켰지만, 그 기쁨도 잠시... 작살의 줄이 순식간에 선장의 목을 휘감으면서 에이허브 선장 역시 ‘모비딕’과 함께 바다속으로 사라진다.  결국 에이허브 선장의 잘못된 집착으로 인하여 선원들은 피쿼드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화자였던 이슈마일 만이 수장을 면하고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이 처절한 대결에서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라는 물음을 던져 본다.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힌 한 인생의 투쟁과 파멸...   


‘삶은 방향이다’라는 말처럼 인생의 목표는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 무엇인가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것에 대한 복수...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이나 에이허브 선장처럼 복수가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복수를 하고자 인생을 걸고 ‘한번만 걸려라’ 지켜보고 있으면 평생동안 한번쯤 기회는 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동안 나의 인생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만큼 그 복수가 내 인생의 가치와 같은가?   


좀 더 나아가 인생의 목표... 방향은 제대로 가지고 있는가?

만약 인생의 목표가 옳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혹시 지금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그 길은 과연 옳은 방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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