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용서는 왜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가?
세상에 복수가 만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복수는 왜 그다지도 파괴적인가?
복수가 줄어들고 용서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잡아먹어야 하는 세링게티의 먹이사슬처럼, ‘공격이 최고의 수비’라 하는 공격본능이 생존의 필수인 것처럼 복수를 한다. 복수라는 말을 하면 옹졸하고 치졸하며 매우 부정적으로 보여져 다른 적절한 이유와 명분으로 덮을 뿐이지 복수는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간의 삶의 방식으로, 각자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히 선택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1801년 잉글랜드 요크셔지방. 바람이 불면 정면으로 바람을 맞이하는 ‘워더링하이츠’라는 집이 있다. 황량한 벌판에 위치한 ‘워더링 하이츠’ 에 세입자인 로크우드씨가 저택의 주인 히드클리프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다. 그러나 눈보라에 갇혀 하룻밤을 그 곳에서 묵게 되는데, 우연히 방안에서 곰팡이 나는 한권의 책을 발견한다. 그리고 캐서린 언쇼의 유령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늙은 하녀 넬리에게 히드클리프와 워더링 하이츠에 대해 듣게 된다.
폭풍우 치는 어느 날, 이 농장의 주인인 언쇼 씨는 리버풀에서 고아 한 명을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다. 그는 그 아이에게 히드클리프 이름을 지어 주고 친자식인 힌들리, 캐서린과 함께 키운다. 죽은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줄 정도로 히드클리프를 편애하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 때문에 힌들리는 히드클리프 적대시해 사사건건 그를 학대하지만, 캐서린과 히드클리프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다.
노환으로 언쇼 씨가 죽은 뒤 힌들리의 학대는 더욱 심해지지만 그것 때문에 두 사람을 이어 주는 끈끈한 정은 더욱 강해진다. 힌들리는 결혼해 헤어턴이라는 아들을 낳고, 그의 학대는 처자식에게까지 미친다.
어린시절부터 같이 자랐던 친구이자 애인인 캐서린까지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아들인 에드거에게 사랑을 품자 히드클리프는 상심을 한다. 그리고 캐서린과 가정부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는 히드클리프...
“근본도 모르는 히드클리프와 결혼한다는 것은 내가 비천해지는거야” 충격을 받은 히드크리프는 캐서린을 떠나고 만다. 그 뒷말을 듣지 못한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히드클리프를 사랑하는건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와 나의 영혼은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어”
캐서린은 필사적으로 그를 찾지만 끝내 찾지 못한 채 에드거와 결혼한다.
3년 뒤, 히드클리프 부유한 신사가 되어 돌아오지만 그는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캐서린에 대한 사랑과 힌들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몸이 약했던 아내 프랜시스의 죽음이후 폐인이 된 힌들리를 도박으로 빈털털이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으로 힌들리가 죽자 힌들리의 아들인 헤어턴에게 자신이 당한대로 앙갚음을 하여 무식한 머슴으로 키운다. 또한 자신의 애인을 뺏어간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해서 결혼한 뒤, 그녀를 학대한다. 그리고 광기어린 복수와 애증은 캐서린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집착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캐서린..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편히 쉬지 못해”
“당신이 유령이라도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줘”
한편 에드거는 죽은 아내가 남긴 외동딸 캐서린을 곱게 키운다. 히드클리프는 린턴 가문의 재산을 손에 넣기 위해 자기 아들 린턴과 캐서린의 딸을 강제로 결혼시키는데, 린턴은 그 직후에 병으로 죽게 되고. 에드거도 살아갈 힘을 잃은 채 죽는다.
몇 년후 겨우 복수심을 가라앉힌 히드클리프는 캐서린의 환영을 보면서 죽는다. 이제 언쇼와 린턴 집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헤어턴, 그리고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캐서린의 딸뿐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 새 맑은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고, 얼마 뒤 둘은 결혼한다.
영혼이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던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었지만, 휘몰아치는 폭풍 앞에서 그들의 사랑은 비극이 되어 파멸과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사랑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랑은 아름다운 유리그릇 같아 자칫 깨어졌을 때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겨누기도 한다. 사랑은 죽은 연인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체를 끌어안을 정도로 강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과 하나가 되기 위해 죽음을 원할 정도로 치열하다. 그리고 증오도 두 집안을 완전히 파멸로 몰아넣을 정도로 강렬하다.
사랑은 부드럽고 행복하지만, 배신의 아픔은 굶주린 맹수의 이빨처럼 날카롭다.
자신을 학대하고 가시처럼 뾰족한 말로 주위사람들을 찌르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모두를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복수는 결국 자신의 삶과 모두 삶을 불행하게 하며 비극을 불러온다.
히드클리프는 선과 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또 공존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분노로 타오르는 열정이 한 사람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복수가 다 이뤄지면 숨어 있는 고통이 다시 살아난다" 영화 올드보이의 대사이다. 복수를 꿈꾸며 실행할 때는 마치 마약의 효능처럼 복수를 해야할 이유에서 오는 고통과 아픔을 잊게 할 수 있지만, 복수를 완성했다 해서 그 고통과 아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고통과 아픔은 복수를 통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치유를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치유의 방법이 바로 용서이다. 용서는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마침내 꽃을 피워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