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독 케빈 코스트너
출 연 케빈 코스트너, 메리 맥도넬, 그레이엄 그린, 로드니 A. 그랜트
1990년 제작 / 미국, 영국 / 183분
1863년, 테네시주 성데이비드평원 남북전쟁으로 두 진영의 군이 대치 중에 있다. 부상으로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말을 듣는 던바 중위(케빈 코스트너)는 전투장으로 돌아가 목숨을 포기한 채 두 진영 사이를 말을 타고 달린다. 북부연합군 소속인 던버중위의 돌발적 행동에 양 진영은 소강상태를 벗어나 부산한 움직임을 보인다. 남부군에서는 던버중위를 쓰러뜨리기 위해 총을 쏘고, 북부연합군은 던버중위의 행동에 힘을 얻어 돌격한다. 그리고 그의 돌발적 행동은 전장의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기폭제가 되고 장군의 눈에 띄어 다리는 잘라내지 않고 치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인디언과의 전투가 끊이지 않는 다코다 평원에 부임을 자원하여 떠나면서 이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가 자원한 곳은 서부지역의 미개척지역인 헤지웍 요새라는 최전방으로, 이미 인디언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쓰레기와 죽은 짐승들의 주검만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 그는 홀로 남게 되고, 연못에서 동물들의 주검을 꺼내어 화장을 하고 쓰러져가는 요새의 움막을 다시 세우는 정비를 하며 부임지에서의 임무를 시작한다.
허름한 통나무 요새에서 후속 기병부대를 기다리는 던버 중위는 일지를 쓰며 전쟁의 시끄러움을 잠시 잊고, 철학자처럼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관찰하며 잡일로써 조용한 나날을 보낸다. 아끼는 애마 '시스코'와 가끔씩 요새에 찾아와 어슬렁거리는 늑대 한 마리가 그의 동료이자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우족 인디언들이 던버 중위의 말 ‘시스코’를 도둑질 하려다 ‘시스코’의 충성스러움으로 실패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인디언들과의 첫 만남이었고 그들과의 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할까?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서서히 가까워진다. 수우족 삶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버팔로 사냥, 수우족의 앙숙인 포니족과의 결투, 인간적인 교감 등으로 그들과 친분이 두텁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던버 중위와 수우족은 가까워진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현명한 족장 '열 마리 곰', 다혈질이지만 용감한 전사 '머리에 부는 바람', 인디언이 된 백인 여자 '주먹 쥐고 일어서', 수우족 제사장인 ‘발로 차는 새’... 그 사람의 특징적인 것으로 이름을 짓는 그들의 풍습... 던버 중위는 요새에 어슬렁거리던 늑대 때문에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을 그들로부터 얻는다.
수우족의 삶속으로 깊이 들어온 던버 중위는 가치관의 혼란을 갖게 되는데, ‘주먹 쥐고 일어서’와 결혼을 하며 수우족과 살기를 결정한다. 수우족과 함께 겨울캠프로 이동하려할 때 그의 짐에 일기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요새로 찾으러 간다. 그러나 그는 기병대의 배반자로 취급받아 죽음의 위기에 몰리지만, 수우족 친구들의 극적인 구출작전으로 기병대를 몰살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둘도 없는 그의 애마 '시스코'와 늑대 '두 개의 양말'을 잃고 만다.
‘열마리 곰‘과 ‘늑대와 춤을‘의 대화.
"괴로운가?"
"백인 군인들을 죽인 건 잘한 일이지만, 아마도 미군들이 나를 찾을 것이다. 나와 함께 있는 여러분도 몰살될 것이다. 내가 떠나야 한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들을 찾아보겠다"
"네 생각이 틀렸다. 미국들이 찾는 존 던바 중위는 없다. 단지 존재하는 건 수우족의 ‘늑내와 춤을‘만이 있을 뿐"
그는 더 이상 기병대 중위 던버가 아닌 수우족의 ‘늑대와 춤을’이 되었고, 기병대나 수우족이나 모두 그렇게 인정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누가 진정 잔인한 살인마이며 야만인인지 깨달은 던버 중위는 백인으로서의 삶을 완전히 버리고 인디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그들은 기병대를 피해 눈 내리는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늑대와 춤을’은 자신 때문에 수우 족이 피해를 입을까 하는 걱정으로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내 ‘주먹 쥐고 일어서’ 와 함께 수우족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의 이별과 함께 수우족도 그리고 아름다웠던 서부도 같이 그 운명을 마치게 된다.
‘늑대와 춤을’과 아니 ‘주먹 쥐고 일어서’ 둘이 떠날 때 자막이 올라간다.
"13년 후, 그들의 마을은 폐허가 되었고, 그들의 버팔로도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수우족(Sioux)은 네브라스카 로빈슨 요새(Fort Robinson, Nebraska)에서 백인에게 항복했다.
평원의 위대한 기마민족 문화(The Great Horse Culture)는 사라지고, 서부 개척(the American Frontier)은 역사 속으로 소리없이 묻혀갔다.“
"삶이란 신비로운 것이다. 죽으려고 한 건데 뜻밖에 영웅까지 됐다"
북부군과 남부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두 진영사이를 말을 타고 달리던 모습과 북부군의 승리... 그 때 던버 중위의 말이다. 인생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시대와 상황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안에서 마치 떠가는 나뭇잎처럼 휩싸여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한다.
남북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참전과 부상, 다리를 자르는 것보다 죽음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 말을 타고 달린 것일 뿐인데 그것이 승리의 기폭제가 되어 오히려 전투의 영웅이 되었다. 그 전쟁을 피해 평화로운 자연의 품을 찾아 간곳이 인디언들과 전쟁터 였지만 그는 그곳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 인디언이 되었고, 또다시 그들과의 이별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
우리의 삶을 찬찬이 돌이켜보면, 마치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인생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에게 묻지도 상의하지도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무수한 일들이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그것이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 무릇 기하인가... 그나마 그러한 속에서도 그것에 휩싸이지 않고 나의 주체를 잃지 않은 것만이 다행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남북전쟁의 가장 큰 이유는 흑인들의 노예해방이었다. 그것이 북부군의 아름다운 이유였다. 그러나 그들은 원주민인 인디언들과 전쟁을 하며 영토 확장과 다스리기를 추구하였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노예해방이라는 멋진 이유가 전쟁의 이유였다면, 원주민인 인디언을 정복하고자하는 전쟁은 어떠한 아름다운 이유를 갖고 있을까?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의 극단적 표현이 전쟁이라 말한다면 무리가 있는 표현일까?
그러한 탐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행동이, 던버 중위에서 벗어나 선택한 ‘늑대와 춤을‘의 삶이 아니었을까?
‘열 마리의 곰‘, '머리에 부는 바람', '주먹 쥐고 일어서', ‘발로 차는 새’, ‘늑대와 춤을' 이라는 이름들... 만일 그들의 풍습대로라면 나는 무슨 이름으로 불리어졌을까?
사람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은 삶의 모습에서 나오는데, 결국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자신이 세운 삶의 원칙으로 표현되어 일정한 패턴을 나타내고 그것이 자신만의 특성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늑대를 보고 총으로 쏴 죽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자연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 함께 춤을 춘 사람이 있다. 야생의 야수로 여기는 사람이 있어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있지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각자의 특성대로 이름을 지어준다면 그 나름대로의 이름이 다 있겠지만, 그 이름대로 어우러져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전쟁보다 싸움보다 다툼보다 경쟁보다 그래서 짓밟고 올라서기보다 끌어주고 밀어주고 위로하고 배려하고...
이유가 아름다운만큼 수단과 방법도 아름다운 우리들의 삶을 꿈꿔본다.
< 자연과 사람을 위한 기도문 >
바람결에 당신의 음성이 들리고
당신의 숨결이 자연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수많은 자식들 중에
힘없는 조그만 어린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눈이 오랜 동안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만물들을 내 두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열어주소서
당신이 우리 선조들에게 가르쳐준 지혜를
나 또한 배우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나 또한 깨닫게 하소서
다른 형제들보다 내가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 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리하여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다할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 품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소서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 나오는 수우족 인디언의 구전 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