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희곤
주연 조승우 양동근
2011년 / 한국 / 127분
한국 야구사에 또 없을 두 개의 큰 별이 있었다. 최동원과 선동렬!
5년이라는 나이 차이로 활동 무대에 대한 시차가 좀 있었지만 82년 출범한 프로야구 리그로 인해 몇차례
게임을 가졌고, '누가 더 쎄냐'에 대한 관심은 수많은 설(說)들을 만들어내어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그들이 라이벌로서 관심과 흥미를 자아냈던 것은한국야구의 국보급 대표 투수라는 실력 이외에 영남과 호남, 연대와 고대, 롯데와 해태등 우리나라 라이벌이라는 대결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동원은 고참 국가대표로, 선동렬은 후배투수로서 국가대표팀에서 조우한다. 그리고 각종 세계대회에서 명성을 떨치지만 국방의 의무 때문에 해외 프로팀 이적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최동원은 전성기의 마지막시기에 접어드는 83년, 선동렬은 전성기 진입시기인 85년 각각 롯데구단과 해태구단에 입단한다. 이 영화는 최동원과 선동렬이 최고 투수가 되기까지 우연이 아닌 피나는 훈련으로 인하였음과 투수로서 늘 고통으로 다가오는 어깨 수술과 손가락 갈라짐이라는 역경을 어떻게 이겨 냈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주변인들과 메스컴에서 부추기는 갈등, 그것을 감내하며 이겨나가는 인간적 아픔을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영화의 크라이막스는 두 투수가 완투 연장경기를 치루면서 전무후무한 투구수를 기록한 두 투수의 세번째 맞대결 경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 선수의 나이로 보면 선동렬은 떠오르는 태양과 같았고 최동원은 지는 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어 라이벌 대결이라 하기에 힘의 균형이 맞는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타 조건은 흥행을 높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드라마틱한 무승부와 두 투수의 우정어린 포옹, 그리고 관중들과 화합하여 서로를 격려하는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이후 의협심 강한 성격을 가진 최동원은 선수협의회 사건으로 롯데구단에서 삼성구단으로 이적한 후 90년 은퇴하였으나 야구계 야인 생활을 보내다가 2005년부터 한화프로야구 투수코치를 엮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부침의 생활을 말이라도 하듯 2011년 53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반해 선동렬은 참으로 화려한 야구인생을 펼였다. 국보급 투수로 각광을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 주니치 드레곤스구단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였고, 이후 삼성코치 및 감독, 기아구단 감독을 엮임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야구인생은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하겠다.
소년 네 명이 까만 타이어튜브를 가지고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그중 한 명이 '조오련과
물개가 헤엄치면 누가 이기냐'라는 물음을 던지며 논쟁하던 '친구'란 영화가 있다.
세상에 만연한 경쟁의 논리가 없다면 사실 누가 이기든 그게 무슨 대수랴!
내가 바라는 것을 응원하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거지!
그러나 이해득실과 욕심과 승부욕이 지나치게 개입되면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잔인한 승부의 세계로 치달아 친구를 죽음앞에 설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경쟁이란 것이 서로를 격려하며 이끌어가는 도구가 아닌 남을 밟고 올라서서 승리의 찬가를 부를 것이
인간의 본능 때문일까?
아담의 두 아들중 하나님이 제사를 받은 아벨을 시기하여 죽인 가인이 우리들의 본성이란 말인가?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하며 그 연수를 자랑하는것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 한 것일까?
영화의 두 투수는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아끼는 관계였지만 서로 다른 곳의 길을 걸으며 주변의 부추김과 그것에 의한 경쟁 본능이 서로를 적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이겨야만 하고 그것을 위해 투쟁심을 길러야 하고 주변의 힘까지 결집하여 확대해나가고 급기야 전쟁을 불사하는 것... 이 시대의 경쟁은 과연 누구의 승리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로 격려를 받으며 한시도 경쟁의 대열에 서지않은 적이 없었다. 더 빨리 걸야야 했고, 더 빨리 말을 해야 했고, 더 빨리 책을 읽어야 했고,..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했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했고, 더 좋은 차를 사야 했고... 더 빨리 승진해야 했고, 더 빨리 집을 사야 했고, 더 빨리 많은 돈을 모아야 했고... 누구보다 더 빨리, 누구보다 더 좋은... 우리는 남을 의식하든 내 자신의 욕망이었든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 누구를 이겨야 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인 줄 알았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처럼 이기는 것이 절대 선(善)인 줄 알았다. 거북이가 잠자는 토끼를 깨워 같이가면 바보가 되는 줄 알았다.
이 영화의 제목은 퍼펙트게임이다. 퍼펙트!
우리 인생의 퍼펙트를 꿈꿔 본다. 상대방을 더 높여 주고, 더 사랑하고, 더 배려하고, 더 아껴주고, 더 격려하고, 더 참아주고...
빨리 가려면 혼자 가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했다. 인생 7,80년 같이 걸어가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이야기하듯 살아가는 것. 상생의 실천..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 회복하는 것, ad fontes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