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이경영
일제강점기 일본군 요인과 친일파 암살을 계획하는 임시정부와 독립군, 임시정부 간부에서 일본 형사로
전향한 배신자, 그리고 본의아니게 독립군으로 전향하여 암살작전에 가담하게 되는 살인청부업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광복 70주년을 맞아 암울했던 우리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이다.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이 친일파 사업가 강인국(이경영)과 일본요인을 폭탄테러로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공교롭게도 이강국 처의 도움으로 그 집에 피신해 있었다. 이를 눈치챈 이강국을 피하여 달아나지만 염석진은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이강국의 처는 살해를 당한다. 이때 강인국의 쌍둥이 여아 중 한 아이는 이강국 집에 남게 되지만 또 한 아이는 유모와 함께 만주로 가게 되는 장면이 영화의 도입부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강국과 일본군 사령관을 암살하기 위해 작전을 세우고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에게 암살 임무를 맡겼고, 임무수행을 위해 경성으로 잠입한다. 그리고 D-Day를 잡고 암살 실행 장소를 찾아 세부 작전을 세운다.
그러나 변절자가 된 염석진은 살인청부업자 피스톨(하정우)를 고용하여 암살작전을 방해하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암살 작전은 성공한다. 그리고 해방... 염석진은 여전히 경찰간부로 승승장구하며 친일파 청산 재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뒷골목에서 안윤옥과 독립군 출신에게 처단을 받는다.
이 영화에는 나오는 인물을 몇 개의 부류로 나누어 본다.
안옥윤이 독립군에 들어간 배경은, 청산리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그 보복으로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하는 참상을 저질렀는데 그 때 안옥윤의 엄마도 살해를 되었던 것이 배경이 되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들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대한독립이었다.
그들은 나라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길이 오직 독립에 있다 믿고 삶과 목숨을 걸고 일제와 싸웠다. 그들에게는 개인의 삶보다 국가와 국민의 위기 극복이 더 우선이었고, 그것에 모든 것을 바쳤다.
지금 이 시대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기의 인생을 바치는 사람이 있을까?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면 독립군처럼 자기의 인생과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독립군처럼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은 거창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자기에게 부여된 몫이라도 제대로 감당하며 살고 있는 걸까?
이강국은 철저하게 자기자신을 위한 자기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나를 찾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철저히 나는 나일 뿐이다. 그에게는 상황에 맞는 처신술이 중요하며 상황을 활용하여 부를 이뤄가고 상황에 필요한 인물을 찾아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다. 인생은 방향이 중요하다 하는데 이강국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은 부와 명예에 있었고 그것에 필요한 권력과의 결탁만이 오로지 삶의 목적이었기에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인물이 활용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경제적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서로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이치일까? 이러한 모습은 나라를 잃은 비극에서 나타난 극단적 모습일 뿐 지금 이 시대에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영화의 애피소드에 지나지 않을까? 이 시대에는 이강국과 같은 사람은 절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아픈 인물아닌가 한다. 한 때 독립운동가로서 김구선생의 신임이 두터웠지만, 변절자가 되었다. 독립을 위한 임시정부의 수 많은 작전에서 공을 이뤘고 목숨을 넘나드는 총상도 수 없이 당했지만, 결국 그는 변절자요 반역자로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을 받아야만 했던 비극적 인물이다.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을 이겨내고, 변절의 제안도 끝까지 거절하고 죽음의 길을 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나석주 처럼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거나 그 길에서 최후를 맞이한 이름없는 어느 한 명의 독립투사가 되었겠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현실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인생에 다가 온 선택이었다면 참으로 생각이 많았을것 같다. '적당히'라는 말로 눈을 감아야 하고 귀를 닫아야 하고 말을 말아야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의 현실, 살아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강압의 손길에 묶여 수시로 현실에 타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에 염석진과 나는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본다. 때로는 가족을 위해, 롱런과 승진을 위해, 부딪침을 피하기 위해... 이런 저런 모습으로 적당히 뒤돌아서야 하는 모습들... 그래서 염석진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영화의 맥을 이어가는 럭키보이 캐릭터. 간간히 이런 사람들이 있어 살 맛이 난다. 곤경에 처했을 때 마치 팅거벨처럼 돌연 나타나 도움을 주고, 어떨 때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가 누구의 도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평생의 은인이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인생의 무용담에 나타나는 행운의 손길이 인생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빼앗겼으니 억울하지 않고 속터지지 않은 우리 민족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들은 만주나 중국이나 해외로 나가 독립투사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살던 곳에서 그냥 살았던 사람들, 바로 일반 민중이고 백성이고 국민이고 대다수의 우리 민족이다. 적극적으로 일본에 동조하지 않았으면 모두 독립운동가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적극적 동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지시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살았으니 소극적 친일파라 할 수 있을까? 때로는 이 모습으로 때로는 저 모습으로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었던 그 시대 대다수의 우리 민족은 뭐라 구분해야 할까?
6.25 한국전쟁 지리산 빨치산 토벌때 이러한 이야기가 있았다. 지리산이 삶의 터전이 었던 그 곳 주민들은 낮에는 국방군을 도왔고 밤에는 빨치산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한다. 그들이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그들은 그냥 그곳에서 사는 주민으로서 낮에는 국방군의 점령지이지만 밤에는 빨치산들이 내려와 밥을 달라하는 그곳에 적군과 아군이 무슨 구별이 있었겠는가.
캄보디아는 1975년~ 1979년 소위 킬링필드라는 아픔의 시대가 있었다. 폴 포트 정권하에서 수 많은 지식인들과 반정부 인사들이 포함된 당시 인구 1/3이 학살당한 시대로 그 참혹한 현상을 영화로 제작하여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폴 포트는 10대후반의 소년소녀를 선동하여 학살의 도구로 그들을 이용하였고, 그 참상은 말로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한다. 이 사건이 시작된지 금년으로 40주년을 맞이한다.
그들은 이 사건을 입에 담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 3,40대 나이의 한 세대 공백을 가져 올 정도로 너무 참혹하여 기억조차 하기도 싫은 것도 있지만, 인구의 1/3이 학살을 당했기에 한 가족안에 죽는자와 죽이는 자가 공존할 수 밖에 없어 또 다른 아픔을 가져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짜 이유라 한다.
삼일절과 광복절이면 친일파 청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에서 처럼 이강국 염석진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 처단하고 벌을 주는 것도 친일파 청산이지만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는 것도 매우 중요한 친일청산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바라고 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정신을 높이 기려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중심이 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진정한 친일청산이라 하지 않을까 한다. 희생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하는 것...
누군가는 전체를 위해 독립투사들 처럼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자기의 생각만을 주장하고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법을 어기며 꼼수도 부리겠지만
누군가는 정의로운 척하며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도 하겠지만
대다수 민중인 우리에게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 살아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가슴에 품고 늘 생각하며 행동하려 하는 문화가 우리들의 문화라고 한다면,
그것이 독립을 위해 인생을 걸었던 그들의 진정한 바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이 그렇게도 되찾기를 염원했던 조국..
그 조국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조국의 이름으로 모두에게 좀 더 확인해 준다면 친일청산의 구호가 더 이상 메이리쳐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