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크 니콜스 출연 더스틴 호프만, 앤 밴크로프트, 캐서린 로스 1967년제작 / 미국 / 105분
1960년대를 배경으로 당시의 젊은 세대의 방황, 복잡한 심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사랑... 그리고 자녀들을 압박과 강요로 구속하는 기성세대들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의한 젊은 세대들의 방황과 구속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모습은 50년이 지난 지금 60년대와 그다지 변하지 않아 예나 지금이나 같아 보인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모범생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이 집으로 돌아오며 영화가 시작된다. 부모님을 비롯한 친구들은 그를 환영하며 그의 장래를 기대하지만 정작 벤자민은 기대를 부담스러운 압력으로 느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해 한다. 이러한 방황 가운데 찾아온 유혹이 있었으니 벤자민의 어머니 친구인 로빈슨(앤 밴크로포트)과의 육체적 탐닉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로빈슨의 딸 일레인(캐서린 로스)를 만나며 벤자민은 일레인과 사귀게되고, 로빈슨은 벤자민과 일레인의 관계를 방해하게 되는데, 급기야 벤자민과 로빈슨의 관계는 로빈슨의 남편과 일레인에게 알려져 둘은 헤어지고 만다. 일레인의 결혼 소식을 들은 벤자민은 결혼식을 올리는 교회로 찾아가 소란을 피운다.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는 일레인의 손을 잡고 달아나 버스를 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이 영화는 약간의 선정적 장면과 로맨스를 가미한 내용으로 개봉 당시 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의 내용과 어울어지는 사이몬 앤 가평클의 음악이 삽입되어 영화의 격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Mrs. Robinson (Simon & Garfunkel)
벤자민은 그 당시 60년대의 전형적인 젊은이를 대변하고 있다. 부모들의 강압과 구속 그리고 대립, 당시는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과 히피문화로 기성세대에 반발했던 반항의 시대이다. 벤자민의 무표정한 얼굴과 고뇌에 찬 눈빛이 당시의 젊은 세대를 보여 주고 있다.
로빈슨부인은 60년대 미국 중산층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기성세대들을 표상하고 있다. 로빈슨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인간적인 순수함은 쉽게 버릴 수 있으며 거짓과 모략, 남을 짓밟는 것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The Sound of Silence (Simon & Garfunkel)
물 속을 나오려 하면 다시 밀어 넣고, 다시 나오려 하면 또 다시 밀어 넣고... 그렇 게 반복되어지다 결국 벤자민은 주저 앉고 만다.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생각 틀속에 자녀를 집어 넣으려 하지만 그것을 이기지 못한 젊은 세대는 주저 앉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닫는 채 침묵의 소리를 말하고 듣는 것으로 기성세대들의 압박과 강요에 반항한다.
Scabrough Fair (Simon & Garfunkel)
벤자민은 일레인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의 결혼식장으로 달려간다. 부모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뜻대로 살아왓던 그였지만 이제 자신의 뜻대로 살기 위해 달린다. 그리고 결혼식작에 들어가 일레인과 함께 결혼식장을 도망나와 버스를 타고 그들의 삶을 찾아 떠난다.
1950,60년대에 태어나서 산업화시기였던 70,80년대의 청년기를 거쳐 지금의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기성세대와 8,90년대에 태어나 청년기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간에는 여러부문에서 상당한 Gap이 존재하고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전혀 문화권에서 서로가 추구하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살아온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그것을 준용하기를 젊은세대에 요구해왔다. 그래서 수많은 스펙 쌓기에 젊은 열정을 바쳤고, 인생의 암흑기라 여길 정도로 힘든 입시지옥을 건넜고, 이제는 알바와 비정규직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고, 친구라기보다는 비교의 대상자인 엄친아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들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 몹시 궁금해진다.
혹시라도 돈 걱정없이 부자로 사는것, 정규직으로 입사하는 것,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 이렇게 생각할까?
'이러한 것들은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야' 라고 말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할 자신이 있는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공부를 독촉했다면, 공부하는 목적을 무엇이라 했는지...
부모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강요했다면, 무엇을 목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라 했는지...
최근 인기몰이를 했던 베테랑이라는 영화가 있다.
재벌의 아들이 잘못한 것을 무마하기 위해 처조카와 식사를 하며 나중에 회사의 주요보직을 줄 것을 약속하며 대신 죄를 맡아 감옥에 갈 것을 회유하는 장면이 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왜곡된 사랑의 표현... 그것을 보고자란 아들은 마약을 하며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온갖 못된 짓을 난무한다. 그것이 어찌 아들의 잘못이랴...
그동안 살아왔던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했을지라도 이제는 기업의 논리와 경쟁의 논리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소중함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 주는 기성세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60년대의 영화.. 50년이 지난 2010년대... 무엇이 달라져 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