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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 Fontes Oct 18. 2015

음악 이야기 - 갑돌이와 갑순이


예전에 김세레나 라는 가수가 부른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노래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모르는 척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간 날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뿐이래요. 곁으로는 음음음 안그런 척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간 날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뿐이래요. 곁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더래요.  


가사의 내용보다는 민요풍의 흥겨운 음악과 한복을 입고 애교 섞인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던 가수의 모습이 머릿속에 더 남아 있다. 그것은 어렸을 적 가사의 내용을 음미할 만큼 성숙지 못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러한 것에 흥미를 느끼기보다 음율이 주는 친숙함이 더 좋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콧노래로 흥얼거릴 노래가 아닌 말 그대로 눈물 없이 부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애절한 비련의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혹여나 서로의 마음을 들킬새라 몰래 눈 빛으로만 나눴을 그들의 사랑. 동네 어귀에서 서성이다 갑순이의 그림자라도 보일 양이면 느티나무 옆에 몸을 숨기며 곁눈으로 지켜 봤을 것이고, 갑돌이의 인기척에 붉은 낯빛을 보이며 후다닥 뛰어 갔을 갑순이... 둘이는 그렇게 순수한 첫사랑의 감정을 남몰래 키워가며 많은 밤을 설쳤을 것이다.


알 듯 모를 듯 주고 받는 풋사랑이었지만 그 마음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먼 발치에서라도 서로의 모습이 보이면 콩닥거리는 마음을 들킬까 딴청을 피워야 했고, 어쩌다 같이 있는 자리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던 것이 몇 날이었을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마음속에서 가꾸어 온 사랑이었는데... 결국 그들의 사랑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떠날것을 미리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 아니지만...' 한용운님의 시 '님의침묵'에서 처럼 사랑에 대한 불길한 징조를 조금이라도 느꼈을까... 노랫말대로라면 그들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만나고 헤어짐이 인생의 다반사라 하는 생각은 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님의 침묵 싯구절을 인용하여 갑돌이와 갑순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낫에 베인 피맺힌 손가락을 옷고름으로라도 싸메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먼 발치에서 안타까워 했고, 개울가에서 빨래감을 들고 가면 저만치 뒤따라오며 아닌 척 딴청을 부리던 모습이 입가에 웃음짓게 했고, 막걸리 한사발에 타령을 한껏 부르며 모를 심던 모습이 자랑스러웠고, 겨우살이 뗄깜 한 지게를 지고 땀흘려 산을 내려 올 때 시원한 우물물이라도 한대접 떠주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갑순이 머릿속에 가득하게 사무치는 갑돌이 모습이었다. 혼례청의 시간이 어찌 지났는지... 첫날밤 호롱불이 꺼지자 갑순이는 숨 죽이며 눈물을 훔쳤다.

갑돌이도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몇날 며칠을 술로 지새우며 울었다. 그리고 뒷산 마루에서 동구밖으로 사라지는 갑순이의 가마 행렬을 바라보며 팔뚝소매로 굵은 눈물을 훔쳤다. 아마도 하늘이 무너지는 마음이었으리라.... 뒷동산 마루에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갑돌이라는 것을 갑순이 또한 몰랐을리 없다.


한동안 갑순이네 집앞을 오며가며 담장 너머 혹여라도 있을지 모를까 고개를 들어 보지만 시집간 갑순이가 친정에 있을리는 만무하고, 갑순이의 부모를 원망의 눈초리로 처다보며 퉁명스런 인사를 던지기도 했고 못 본채 인사도 안하며 지나치는 것이 갑돌이의 소심한 복수였다. 지금이라도 갑순이를 찾아가 도망가서 같이 살자 해볼까? '나 시집가' 라고 말했을 때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던 '나랑 도망가자' 라는 말을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지만, 다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오늘밤도 술로 상한 심정을 달래 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갑돌이도 장가를 간다. 저 둥근 달이 갑순이의 얼굴로 보이니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저 달을 갑순이도 보고 있을까? 내가 장가간다는 소식은 들었을까? 이런저런 상념속에 갑돌이의 첫날밤은 하얗게 새어가고... 영문도 모르는 새색시는 갑돌이의 행동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마는 갑순이에게 행하는 갑돌이의 사모는 그칠 줄 모른다.




그후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저런 삶의 모습을 예측하며 뒷말을 만들어 본들 버스 떠난뒤 손 흔드는 격이니 오히려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다.  





운명의 어긋남... 그게 어디 갑돌이와 갑순이의 이야기 뿐이랴....


세상사가 다 그러하니 인생은 번뇌요 고통의 바다라고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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