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나폴레옹 시대 이후 프랑스는 1815년 왕정으로 복고되었다. 그로 인해 취임한 루이 18세가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모두 무시하고, 혁명이전의 시대로 복귀하는 전제정치를 실시했다. 왕정복고로 탄생한 정권은 귀족과 성직자들을 우선하는 정책을 취하여 시민계급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는데, 루이 18세의 뒤를 이은 샤를 10세도 언론탄압과 구 망명귀족의 보호 강화하는 법률제정으로 더욱 시민들의 불만을 샀다.
1830년 샤를 10세가 자유주의자가 대세였던 의회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차기 선거에서 선거권의 축소를 명령하는 7월 칙령을 발표함으로 7월혁명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했고 있는 소위 부르조아 왕이라 부르는 루이 필립이 왕으로 추대됨으로 자유주의와 입헌왕정을 실시하하여 일정 부분의 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제한선거가 유지되어 혁명의 주체세력이었던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하위층)는 기용되지 못했기에 불만을 사고 말아 후에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투쟁 운동으로 루이 필립은 1848년 2월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1829년 프랑스에서는 치정 사건인 라파르그와 베르테 사건이 있었다. 라파르그 사건은 가난한 청년 라파르그가 변심한 애인 테레즈 카스타데르를 질투심 때문에 살해하여 목을 자른 사건이었고, 베르테 사건은 앙투완 베르테라는 청년이 교회에서 미슈부인을 총으로 저격한 사건이었다.
중세시대 상인이나 장인계급은 산업혁명이후 막강한 부를 갖게 되어 부르조아 계층으로 성장하였지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직 안정된 기반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고, 나폴레옹의 몰락이후 왕정복고에 의한 귀족들이 다시 득세하는 것에 시민계급들이 불만을 갖고 있던 상태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두 사건은 스탕탈에게 신분 상승을 위한 젊은 하류계급의 정열을 발견하는 모티브가 되었고, 결국 ‘적과흑’ 의 주인공 쥘리엥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적과 흑’은 ‘1830년 연대사’라는 부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7월 혁명 직전에 지배자가 교체되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평민 청년의 야심을 통해 귀족과 성직자, 부르조아의 삼자가 서로를 헐뜯는 사회의 반동성을 비판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제목의 ‘적’(赤 : 붉은색)은 나폴레옹 시대의 군인(군복)의 영광 또는 공화주의의 열렬한 에너지를 나타내고, ‘흑’(黑 : 검은색)은 왕정복고 시대에 세력을 휘두른 성직자 계급의 검은 옷을 나타낸다고 일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당시 일반 평민이 신분 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군인으로 장교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다.
쥘리엥에게 나폴레옹은 영웅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폴레옹 같은 군인이 되고 싶었다. 군인은 영웅에 대한 찬양인 동시에 그가 출세할 수 있는 수단이었으나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그의 출세욕은 사제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는 두 명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첫 번째는 시장 레날의 자녀를 가르치는 가정 교사였을 때 유혹한 시장 부인이었다. 뛰어난 라틴어 실력으로 레날 시장집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된 쥘리엥은 부유한 계급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신앙심이 두텁고 정숙한 레날 부인을 유혹하지만 그녀의 순정에 이끌려 오히려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쥘리엥을 짝사랑하는 하녀 엘리자의 밀고로 폭로되어 소문이 퍼진다. 그러나 부인의 재치로 위기를 면한 쥘리엥은 장래를 걱정한 사제의 도움으로 브장송의 신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교장의 추천을 받아 파리의 대귀족이자 정계의 거물인 라몰 후작의 비서가 된다.
두 번째 여인은 파리의 후작의 딸 마틸드였다. 후작은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었고, 마틸드 역시 쥘리엥을 좋아했다. 마틸드는 쥘리엥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기 방에 몰래 찾아오도록 유혹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싹이 트고, 마틸드는 쥘리앵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후작은 노발대발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되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작이 레날 집안에 쥘리엥의 품행에 대한 조회를 했는데, 레날 부인이 쥘리엥의 악행을 폭로하는 회답을 보내 왔다. 그 회답은 사실은 레날 부인의 본의가 아니고, 그녀의 고해를 받은 신부가 그녀에게 억지로 쓰도록 강요한 것이었다. 이에 분개한 쥘리엥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베리에르로 달려가, 교회에서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 도중에 권총을 꺼내 레날 부인을 쏘고 말았다. 현장에서 체포된 쥘리엥은 투옥되었으나, 모든 사실을 알게 되어 상처를 치료한 레날 부인과 다시 만나 둘 만의 옛사랑을 확인하면서 깊은 행복감에 젖는다.
법정으로 끌려 나간 그는 “저는 당연히 사형을 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탄압을 하는 자로 지배 계급인 배심원을 고발함으로 단두대의 처형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틸드는 쥘리엥의 목을 안고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고, 레날 부인은 그로부터 사흘 뒤에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세상을 떠난다.
왕정시대의 복고는 보수적 귀족과 진보적 부르조아의 대립이었는데, 진보적 부르조아는 노동자 계급과 부르조아 계급이 혼재된 상태로서 훗날 두 계급간의 충돌을 가져온다. 보수적 귀족에 대항한 쥘리엥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 감정인 욕망을 끌어올려 신분 상승을 꾀하려 두 여인을 사랑으로 이용하려 하지만 결국은 그 사랑에 감복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만다.
불의한 모습이 아니고서는 신분 상승을 꾀할 수 없는 시대적 부조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당시 프랑스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의 부조리 현상이 현시대에는 존재치 않는 것일까?
경쟁의 승자만이 기회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하여 경쟁의 가열을 부추기는 시대, 4포 세대라 일컫는 현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쥘리엥을 절대 악(惡)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퇴직해서 자식이 정규직으로 취직할 수 있다면 그것을 마다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라는 어느 아버지의 인터뷰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형제의 난‘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갑(甲)질이라 하여 갑(甲)과 을(乙)의 구분이 더욱 선명해지고, 개천에서 용(龍)난다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이고, 알바인생 NEET족 히키코모리 패러사이트족 등의 신조어가 현실이 되어가는 지금의 이 시대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스탕탈은 묻는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더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 신분상승을 꾀하는 쥘리엥의 욕망이 이기주의의 극단이라 하여 그에게만 돌을 던져야 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불의함을 꾀하지 아니하고는 신분상승이 어려운 시대의 부조리에 돌을 던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