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무의식이 이끄는 발걸음이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 나는 빈 강의실에서 교사지원서를 책상 앞에 놓고 앉아 있다. 지국장은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지금 바로 그냥 써서 내면 된다"고 쿨하게 말하고는 자리를 비워주었다. 게다가 간밤의 숙취로 머릿속은 멍한 상태였다.
원래는 교사지원서를 받아와 집에서 작성하면서 마지막 고민과 최종 결정을 하려고 했었다. 한번 한 선택은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 고집 탓에 충분히 숙고할 시간이 필요했다. 직업은 한 사람의 인생과도 같은 것 아닌가. 내 삶의 모습이 바뀌는 일인데 그에 걸맞은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 또한 필요했다. 지원서를 쓰다 보면 내 안에서 어떤 생각과 마음이 생겨나는지도 들여다볼 작정이었다. 마치 사직서를 미리 작성해 두고 낼까 말까 망설이는 것처럼 일단 지원서만 써놓고 조금 더 고민을 이어가 보려고 했던 것이다. 적어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낯선 강의실 작은 학생용 의자에 마치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앉아 잠시 생각을 집중했다. 난 지금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어떤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는 질문이 정해졌다.
"과연 깊이 고민하는 것이 맞는가?"
고민은 접어 두기로 했다. 그저 쓰라고 하니 써보자라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름, 나이, 학력, 경력... 그 긴 세월이 참 단출하게도 정리되는구나. 그럴 것을 왜 그렇게 허우적대며 살아왔을까. 아차차 심각해지지 않기로 했지, 다시 마음을 다 잡으며 지원 동기와 비전에 대해서도 작성해 본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 사이 지국장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와 내가 작성해 둔 지원서와 맞바꾸어 갔다. 이력서를 슬쩍 살펴보며 별 것 아닌 내용에도 칭찬 섞인 질문을 건네준다. 참 친절하신 분이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자 억지로 눌러 놓았던 가슴속의 무언가가 쓱 내려가며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느껴졌다. 잠시 스친 그 얼굴을 알아챈 것만 같아 갑자기 마음에 살짝 통증이 느껴진다.
용건이 끝났으니 서둘러 만남을 마무리하고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야 깨달았다.
'내가 입사지원서를 썼다고?'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여기까지만. 다음 스텝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한다.
무거워지지 않으려 애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