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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Jan 20. 2024

너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 일을 할 수 없어.

그게 네 잘못은 아니야.

대학생 때 내 꿈은 카피라이터였다. 

내가 자라 온 90년 대에는 단 한 줄의 광고카피가 온 국민에게 사랑받으며 이슈가 되곤 하는 일이 많았기에 나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감각적인 한 줄을 쓰고 싶었다. 대학교에서 광고 관련 과목을 집중 수강했고, 광고 동아리 회장을 맡으며 스터디와 전시회, 공모전에 열을 올리며 꿈을 키웠다. 어렵게 꿈을 이뤄 작은 광고회사에 취업했고 별 볼 일 없는 나를 뽑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감사해 그곳에 아예 뿌리를 박는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농담처럼 진담처럼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난 이곳에 심겨진 나무야.”


인재개발실. 

회사에서 부르는 HR 부서의 이름이었다.


광고 업무를 메인으로 하면서도 넘치는 애사심에 회사의 교육, 채용에도 늘 두 팔을 걷고 나서다 보니 자연스레 HR의 영역도 내 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어디서 배운 것도 없었지만 작은 회사이기도 했고 애사심과 열정이 넘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했다. 전 직원 12명의 아주 작은 광고회사는 불과 십여 년 만에 로켓처럼 성장했고 코스닥 상장까지 한 어엿한 중견기업이 되었다. 업계 최고라 자부할 수 있는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과 컨텐츠를 만들었고, 채용부터 인사까지 최고의 인재만으로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몸을 사리지 않고 다 했다. 그 덕분에 야근과 주말 출근, 워크샵까지 모든 자리에 내가 있어야 했다. 


1년 치 달력을 쭉 펴고 명절 등 연휴가 있는 날짜를 체크한다. 그렇게 연간 워크샵 스케줄을 Fix 했다. 인원을 추려 비행기 티켓 예약을 먼저 하고 어떻게 하면 모두의 마음을 한 뜻으로 모을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회사에서 연휴에 워크샵을 가재.”라고 불평하는 수준의 고민이었으면 나았을까. 

“이번 연휴에 워크샵을 갑시다.”라고 말해야 하는 워킹맘의 마음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이었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엄마는 얼굴을 보기 힘든 사람이었을 것이다. 잠이 들면 들어오고 일어나기 전에 출근해 버리는 엄마. 나 또한 아이가 보고 싶은 마음을 “엄마 보고 싶어~"라며 울고 있는 아이의 동영상으로 달래곤 했다. 어떤 날은 2박 3일 워크샵을 다녀오느라 이사가 끝마쳐진 새로운 집으로 퇴근할 정도로 집안일을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살았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HR의 업무 범위와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회사의 대표님은 인재개발실장 자리를 놓고 고심하였다. 그리고는 별안간 인재개발실장을 공모하는 사내 공지가 떴다.


“새로운 인재개발실장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지금까지처럼 OOO 이사가 그 자리에서 업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도 했다.


조직이라는 게 원래 그렇겠지만, 가타부타 어떠한 설명도, 예고도, 하다 못해 그동안 수고했다는 격려조차 없었다. 물론 내가 맡고 있는 본래 포지션이 있어 겸임해야 하는 일이긴 했지만, 이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며 이 자리를 맡아 해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문제는,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건 제 자리이고 제 일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미련과 욕심, 두려움과 실망이 뒤섞여 나의 마음을 형용하지 못한 채, 그저 이 일이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지 않을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향후 인재 개발 플랜을 구상해 대표이사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내가 그려 본 미래의 모습과 그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의견을 구했다.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대표님은 흡족하지만 어딘가 슬픈 표정이었다. 


“너는 인재개발실장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했다.


조직 내외의 모든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 조직의 누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또는 어떤 자리가 비어 있고 그 자리에 맡는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그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자리가 바로 인재개발실장이다. 회사 안과 밖의 모든 자리에서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고 파고들고 유혹해야 하기에 그들은 사실상 가정을 포기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래야만 우리 회사를 꼭 필요한 인재들만 가득 찬 꿈의 회사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긴 연설의 끝에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너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너에겐 아이들이 있잖아. 그게 네 잘못은 아니야.”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부정할 수도 없었지만 섭섭함 또한 적지 않았다. 사장님은 내게 충분히 성의껏,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해왔는데 라는 생각이 너무 컸다. 지금의 내 현실을 부정하지도 못하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일이 뚝 끊긴 것과 같은 좌절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세상에 못 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안 되더라도 그냥 부딪혀 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럼 적어도 절반의 성공이라도 할 수 있다고… 그런데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이유가 이렇게나 무거운 거라면 나는 모두를 위해 미련을 내려놓는 것이 맞았다.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말.. 계속해서 가슴에 사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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