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누구도 반기지 않는 나의 성공
워킹맘에게 성공이란...
그날도 술 냄새를 풍기며 밤 12시가 넘은 늦은 귀가를 했다.
불이 꺼진 고요한 집 안에서 친정 엄마와 남편은 두 아들과 씨름하다 겨우 아이들을 재우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 방 안에 있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으니까.
입을 떼기가 어려워 한참을 머뭇거렸다. ‘나중에 말하는 것도 이상하겠지’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
“나 오늘 임원 승진했어.”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잘 됐네. 그렇게 애쓰더니…”
그게 다였다. 더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그나마의 ‘잘 됐네’도 의무감이 지어 낸 단어 같았다.
거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한참을 엄마와 남편의 방 문 앞에 서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술이라면 이미 승진 축하 회식에서 잔뜩 먹고 들어왔지만, 지금 이집 안에서 내 마음의 허기를 달래줄 것은 냉장고 속 차가운 맥주 밖에 없었다.
정신이 몽롱해 저절로 잠에 빠져들 때까지 맥주를 마시다 그대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그날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던 끈이 탁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건.
일만 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항상 옆에 있어 주는 엄마만이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엄마도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내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고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닮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모두가 힘이 들지만, 그럴수록 지금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결국 내가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해 힘이 들면 힘이 들수록 더 열심히 했다.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회사에서 많은 역할을 맡았고, 그 역할마다 제시한 목표를 모두 달성해 연말 보고를 하던 날, 회사 대표님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 않겠냐며 그날로 내게 임원 승진을 내리셨다. 그동안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알았던 동료들은 나보다 더 기뻐하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축하 회식 속에서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가족.
가족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가족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지금의 성공이 나에게만 좋은 일일까. 우리 가족에게도 좋은 일일까. 그들도 지금 내 옆의 동료들만큼이나 기뻐할까. 막상 승진을 하고 보니,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날, 그렇게 들어선 집에서 부정하고 싶었던 진실을 마주했던 것이었다.
힘이 나지 않았다.
철없는 신입사원처럼 회사에서 죽상을 쓰고 다녔다.
모든 것이 무의미했기에 애를 쓸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가정과 회사 모두 최악으로 끝없이 치닫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책임이 무거운 자리이기에 난 여전히 가정에 충실할 물리적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고, 정서적으로 돌아 선 가족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일 또한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자존감이 지하 수백 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웃는 법을 기억해 내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잘해왔던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심지어 언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하는지조차 헷갈렸다. 어색한 호흡에 숨이 모자라 답답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날 때조차도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예전의 나는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고, 지금은 전혀 다른 낯선 누군가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낯선 내가.. 나도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