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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Apr 02. 2024

전업맘이 되니 좋은 점

‘내일 아침은 어떤 메뉴로 차려줄까’


전업맘이 된 후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는 생각이다. SNS를 보면 다들 어찌나 살림을 예쁘고 야무지게 하는지, 따라 하고 싶은 레시피를 저장해 두고는 우리 집 냉장고 속 재료를 체크하며 잠이 들곤 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사랑이 담긴 아침밥을 먹여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지만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하기에, 사랑이 담긴 에너지를 뱃속 가득 채우고 든든하고 씩씩하게 집을 나서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아이들은 알까. 수면도 성향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아침잠이 없다. 5분만 더 자겠다며 투정을 부리기는커녕 알람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나오는 소리를 듣고 나도 뭉그적 댈 새가 없다. 얼마 전만 해도 이런 아침밥의 로망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눈 뜨자마자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부터 매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필요 이상으로 내게 벅찬 감동을 주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내 몸뚱이 하나 겨우 일으켜 씻고 나가기 바빴으니, 아이들이 아침을 어떻게 먹는지 안 먹는지, 냉장고에 먹을만한 게 있는지 조차 모르는 엄마였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난 후의 고요한 집안은 얼마나 평화로운지 모른다. 전날 어질러진 집안을 말끔히 정돈하고, 냉장고 청소나 옷 정리, 이불 빨래 등 집안일 한 두 가지씩 해둘 수 있으니, 집안은 늘 엄마의 손길이 닿아 깔끔하고 편안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커피 한잔의 여유.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광고카피가 된 이유를 그제야 폭풍 공감하게 된다. 심심한 날이면 브런치 약속이나 서점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면, 이른 오후 하교를 하는 아이들을 따스한 미소로 반겨줄 마음의 여유가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았다.




끝없이 불어난 체중 탓에 우울했는데 퇴사를 하니 다이어트도 할 수 있었다. 힘들면 살이 빠진다는 말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잘 먹으며 힘을 내려했던 것 같다. 게다가 매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저녁이면 헤비한 안주와 술자리가 이어지니, 이 나이에 살이 찌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힘이 남아 있어야 운동도 할 수 있다. 이제는 주로 식사를 집에서 하니 원하는 만큼 가볍게 식단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잠도 푹 잘 수 있고 자연스럽게 생활리듬이 건강하게 돌아오며 체중도 건강 상태도 점차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평일에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직장을 다닐 땐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를 위해 연차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 일은 주로 아이가 아플 때이기에 만약을 대비해 허투루 쓰지 않고 꼭 남겨둬야 했다. 그렇기에 일하는 엄마에게 연차란 휴가가 아니다. 회사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일 뿐이다. 이제는 평일에 늘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주말에 할 수 없거나 주말에 하면 복잡하고 피곤한 일을 평일에도 얼마든지 여유롭게 할 수 있다.


사람이 붐비는 주말 대형마트에서 한 달 치 식량을 가득 사서 끙끙대며 들고 와 주방에 잔뜩 쟁여 놓지 않아도 된다. 주로 냉동식품이나 간편식 위주로 쌓아 놓고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후다닥 저녁 식사를 차려내느라 진이 빠지지 않아도 된다. 그날그날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 레시피를 검색하며 여유롭게 준비하고 가족을 기다릴 수 있다.


라이딩을 해야만 하는 학원도 고민 없이 보내줄 수 있다. 날 좋은 날 아이들과 놀이터나 공원에 나가 바깥놀이를 해줄 수 있고, 평일에 체험학습을 마음껏 다닐 수 있다. 박물관, 미술관, 체험관, 놀이공원, 유적지 등 하고 싶은 것 다 말해 보렴 하며 신나게 계획을 세우고, 약속을 꼭 지켜주는 엄마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아플 때면 불안한 마음으로 부탁할 사람을 찾지 않고 늘 곁에서 케어해 줄 수 있다. 한 번씩 아이가 아프면 밤엔 간호하느라 뜬 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에는 출근을 해 또 일을 시작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남들은 다 봤던 인기 드라마를 몇 년 치를 몰아서 봤는지 모른다. ‘도깨비’가 이렇게 재밌는 드라마였다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고,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한다. 읽고 싶었던 책을 쌓아 두고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뭘 하나 배워볼까 싶어 재밌어 보이는 강의가 보일 때마다 신청한다. 꼭 무언가를 하기 위한 배움이라기보다 강의를 듣는 것 자체가 취미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과 하는 놀이나 독서와 관련된 수업, 집안 살림 관련 강의 등 나름 재밌다. 새로운 운동을 하고 싶어 발레에 도전하며 진땀을 빼기도 하고, 악기도 배우고 싶어 첼로 레슨도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어려운 도전은 꾸준히 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


오후가 되어 가족들이 한 명씩 귀가를 하면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 ‘모두들 참 애썼다’, ‘집에 와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은 내 안의 편안함과 여유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그렇게 ‘집에 있는 사람’이 된 후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여유는 가족과의 사랑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 더 이상 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역할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빚더미처럼 쌓여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는 것이 홀가분했다.

사소한 일상이 모두 달라졌고 그러한 삶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결국 이렇게 살게 되어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어느 날 무심코 누군가가 ‘언제쯤 다시 일할 생각이야?”라고 묻지만 않는다면…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며 모른척할 수만 있다면…

‘가족 안에 버무려진 나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굳이 독립된 자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답이 없는 바람에 대한 생각 속에 빠져들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그래도 지금이 과거보다는 훨씬 살아갈 만은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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