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약 Feb 18. 2024

화내는 엄마

내가 봐도 미친년 같아

이 동네 공원의 가로등은 매일 저녁 7시에 켜졌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바로 이 시간이면 어디선가 고래고래 악을 쓰는 어떤 여자의 고함소리가 조용한 동네를 뒤흔들었다. 신경질인 듯 울음인 듯 울려 퍼지는 절규는 마치 동물의 소리 같기도 했다. 도로변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의 어느 주민은 오늘도 들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쯧쯧쯧... 또 출몰하셨구먼.”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새로운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제 더 이상 출근을 이유로 복잡한 서울에 머물 필요가 없었으니까. 남편 직장과 친정집이 가깝고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곳을 찾다 보니 결국 내가 어린 시절을 지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제껏 내 회사와 가까운 곳에 살겠다는 이유로 남편과 친정 엄마는 매일 이 먼 거리를 오갔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살기 좋은 곳”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꼭 그렇게 부르곤 했었다.


정말 그랬다. 공원과 놀이터가 참 많았다. 경사로가 없는 평탄한 지대인 데다가 인도와 차도는 확실히 분리되어 있었고 차가 아예 다니지 않는 도로도 많았다. 놀이터도 미끄럼틀과 그네 몇 개로 구색만 맞춘 수준이 아니었다. 폭신폭신한 바닥 위로 온갖 종류의 다양한 놀이기구가 설치된 놀이터를 발견할 때면 마치 놀이동산을 처음 찾은 어린아이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울에 살 때에는 아이들과 손잡고 동네 산책을 나가 봤자 딱히 거닐 곳이 마땅치가 않았었다. 대문 밖만 나서도 차가 다니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과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들. 하다 못해 동네 약국에 소아를 위한 약은 없고 온갖 숙취해소제나 피로회복제만 진열장에 가득했다.


살기 좋은 동네. 여기선 3살짜리 꼬마들도 킥보드를 씽씽 그렇게 잘 탈 수가 없었다. 이제 곧 7살이 되는 우리 둘째는 유아용 뽀로로 킥보드를 휘청거리며 몇 발작 구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내 위주로 살아왔는지 또다시 죄책감이 훅 하고 밀려왔다.


한참 뛰어놀 나이. 그동안 집 안에서만 지내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렇게 좋은 환경으로 이사도 왔으니 원 없이 놀아 주는 엄마가 되리라 굳게 다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서는 것을 전업맘이 된 내가 반드시 해내야 할 루틴으로 삼았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룰루랄라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겠지. 하하호호 정답게 웃으며 평화로운 가족 나들이가 될 거야.


그러나 그런 내 상상은 철저히 틀렸다. 문제는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얘들아~ 오늘은 뭐 하고 놀지 챙겨가자~”


“킥보드 탈래요~”


“저는 자전거 탈래요~”


“야구랑 축구도 해요~ 배드민턴도 쳐요~ 물총 가져가면 안 돼요?”


하… 이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지며 깊은 한숨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생각 없는 아이들은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바람들만 쉴 새 없이 뱉어 낸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상대로 그게 말이 되니 안 되니, 생각이 있니 없니, 나가서 딴말하면 안 된다 떠들다 보니 현타가 온다. 아니지. 난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아이들과의 씨름을 곧 관두고 만다.


그래도 놀아주기로 했으니 온갖 놀잇감을 이고 지고 아이들과 집을 나선다. 그 순간 잘 타지도 못하는 킥보드와 자전거를 타고는 잡을 새도 없이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 튀어나간 아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지 못할 것만 같은 공포감이 들어 비명을 지른다. 찻길을 옆에 두고 축구공을 튀기는 녀석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다. 이때부턴 온몸에 초예민 감각세포들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좋다고 뛰어나가기 바쁘다. 양손 바리바리 짐을 든 어리숙한 엄마는 고함을 치며 아이들을 쫓아 뛰어간다.


겨우 동네 공원에 도착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지친다. 벤치에 앉아 이제부터 ‘놀아라~ 엄마는 지켜볼게~’라고 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배드민턴 한 판에 숨이 차오른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 너무 힘들어 조금만 쉴게’라며 사정을 하고 자꾸만 도망치게 된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이들은 즐거워하니…


결국 오늘도 아이들은 최대한 늦은 시간까지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리고는 저녁 7시.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왔다. 그제야 명분을 찾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집으로 이끈다.


“이젠 정말 가야 할 시간이야!”


머릿속엔 복잡한 계산기가 돌아간다. 집에 가는 시간, 씻는 시간, 식사 준비할 시간과 식사 시간, 그리고 밤 9시면 취침에 들기로 한 규칙을 지키려면 이제부터 1분도 지체할 수가 없다. 잘 자는 것이 잘 노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정해진 취침시간을 늘 지키려고 애쓴다. 하지만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 아이들이 깨어 있는 것을 감당하기 힘든 엄마의 절박한 퇴근 욕망일 수도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니 한 시가 급하다. 급해진 마음과 지칠 대로 지친 체력은 그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엄마를 초예민한 신경질쟁이로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마음속에 가득 찼던 화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결국 터져버리고 만다. 매일 저녁 7시. 하늘이 어둑해지고 가로등이 켜지는 그 순간, 매일 그 시간이면 어느 정신 나간 아줌마의 고함소리가 근처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졌다. 매일 저녁 7시면 출몰하는 이 구역 미친년.

그게 바로 나였다.


아이를 다그치는 이유는 분명했다.

늦었으니 집에 가서 씻고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위험하게 뛰어가다 다치면 안 되니까.

하지만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모진 말과 무서운 얼굴로 소리 지르며 화를 낼 이유는.


언젠가부터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하면 늘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화내지 않는 것’


멋모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너무 많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스스로 목이 아파 켁켁 댈 때까지. 같은 빌라에 사는 주민들이 날 알아볼까 고개를 들기가 부끄러웠다.


그렇게 겨우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혼술을 마셨다. 너무 미안했다. 오늘도 그까짓 일 때문에 그렇게도 화를 냈구나.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일도 때려치우고 아이들 곁에 있으면서, 결국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짓고 만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결국 화내는 엄마가 되었다.


모른 척 내버려 두면 절대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일들이 있다.

어릴 때 엄마가 시켜주던 학습지, 쌓여가는 설거지와 빨랫감 같은 것들.


엄마의 사랑 또한 그렇다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 채워주지 못했던 만큼 넘치게 보상해 주겠다며 한 맺힌 사람처럼 너무 애를 쓰고 말았다.


밀린 숙제를 해치우느라 한숨을 푹푹 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행복했을까?


학습지가 너무 많이 밀렸을 땐 싹 모아서 버리는 게 아이들의 학습 정서를 더 건강히 할 수 있다고 한다. 쌓여있는 숙제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져 오히려 무력감이 찾아 온다고. 지난 시간의 부족함은 그만 툭툭 털어버리고,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상쾌한 마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전 07화 전업맘이 되니 좋은 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