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맘이 된 후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는 생각이다. SNS를 보면 다들 어찌나 살림을 예쁘고 야무지게 하는지, 따라 하고 싶은 레시피를 저장해 두고는 우리 집 냉장고 속 재료를 체크하며 잠이 들곤 한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사랑이 담긴 아침밥을 먹여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지만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하기에, 사랑이 담긴 에너지를 뱃속 가득 채우고 든든하고 씩씩하게 집을 나서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아이들은 알까. 수면도 성향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아침잠이 없다. 5분만 더 자겠다며 투정을 부리기는커녕 알람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나오는 소리를 듣고 나도 뭉그적 댈 새가 없다. 얼마 전만 해도 이런 아침밥의 로망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눈 뜨자마자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부터 매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필요 이상으로 내게 벅찬 감동을 주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내 몸뚱이 하나 겨우 일으켜 씻고 나가기 바빴으니, 아이들이 아침을 어떻게 먹는지 안 먹는지, 냉장고에 먹을만한 게 있는지 조차 모르는 엄마였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난 후의 고요한 집안은 얼마나 평화로운지 모른다. 전날 어질러진 집안을 말끔히 정돈하고, 냉장고 청소나 옷 정리, 이불 빨래 등 집안일 한 두 가지씩 해둘 수 있으니, 집안은 늘 엄마의 손길이 닿아 깔끔하고 편안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커피 한잔의 여유.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광고카피가 된 이유를 그제야 폭풍 공감하게 된다. 심심한 날이면 브런치 약속이나 서점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면, 이른 오후 하교를 하는 아이들을 따스한 미소로 반겨줄 마음의 여유가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았다.
끝없이 불어난 체중 탓에 우울했는데 퇴사를 하니 다이어트도 할 수 있었다. 힘들면 살이 빠진다는 말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잘 먹으며 힘을 내려했던 것 같다. 게다가 매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저녁이면 헤비한 안주와 술자리가 이어지니, 이 나이에 살이 찌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힘이 남아 있어야 운동도 할 수 있다. 이제는 주로 식사를 집에서 하니 원하는 만큼 가볍게 식단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잠도 푹 잘 수 있고 자연스럽게 생활리듬이 건강하게 돌아오며 체중도 건강 상태도 점차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평일에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직장을 다닐 땐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를 위해 연차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 일은 주로 아이가 아플 때이기에 만약을 대비해 허투루 쓰지 않고 꼭 남겨둬야 했다. 그렇기에 일하는 엄마에게 연차란 휴가가 아니다. 회사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일 뿐이다. 이제는 평일에 늘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주말에 할 수 없거나 주말에 하면 복잡하고 피곤한 일을 평일에도 얼마든지 여유롭게 할 수 있다.
사람이 붐비는 주말 대형마트에서 한 달 치 식량을 가득 사서 끙끙대며 들고 와 주방에 잔뜩 쟁여 놓지 않아도 된다. 주로 냉동식품이나 간편식 위주로 쌓아 놓고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후다닥 저녁 식사를 차려내느라 진이 빠지지 않아도 된다. 그날그날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 레시피를 검색하며 여유롭게 준비하고 가족을 기다릴 수 있다.
라이딩을 해야만 하는 학원도 고민 없이 보내줄 수 있다. 날 좋은 날 아이들과 놀이터나 공원에 나가 바깥놀이를 해줄 수 있고, 평일에 체험학습을 마음껏 다닐 수 있다. 박물관, 미술관, 체험관, 놀이공원, 유적지 등 하고 싶은 것 다 말해 보렴 하며 신나게 계획을 세우고, 약속을 꼭 지켜주는 엄마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아플 때면 불안한 마음으로 부탁할 사람을 찾지 않고 늘 곁에서 케어해 줄 수 있다. 한 번씩 아이가 아프면 밤엔 간호하느라 뜬 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에는 출근을 해 또 일을 시작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남들은 다 봤던 인기 드라마를 몇 년 치를 몰아서 봤는지 모른다. ‘도깨비’가 이렇게 재밌는 드라마였다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고,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한다. 읽고 싶었던 책을 쌓아 두고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뭘 하나 배워볼까 싶어 재밌어 보이는 강의가 보일 때마다 신청한다. 꼭 무언가를 하기 위한 배움이라기보다 강의를 듣는 것 자체가 취미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과 하는 놀이나 독서와 관련된 수업, 집안 살림 관련 강의 등 나름 재밌다. 새로운 운동을 하고 싶어 발레에 도전하며 진땀을 빼기도 하고, 악기도 배우고 싶어 첼로 레슨도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어려운 도전은 꾸준히 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
오후가 되어 가족들이 한 명씩 귀가를 하면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 ‘모두들 참 애썼다’, ‘집에 와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은 내 안의 편안함과 여유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그렇게 ‘집에 있는 사람’이 된 후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여유는 가족과의 사랑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 더 이상 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역할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빚더미처럼 쌓여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는 것이 홀가분했다.
사소한 일상이 모두 달라졌고 그러한 삶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결국 이렇게 살게 되어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