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약 Mar 17. 2024

글을 쓴다는 것

“나는 언젠가 꼭 책을 출간할 거야”


어린 시절부터 세뇌라도 하듯 툭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떤 이는 풋 하고 웃으며 “난 그 책 절대 안 읽을 거야”라며 놀려댔지만,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내게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상관없지만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평생의 소망이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책을 출간한다. 책을 출간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저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성공한 사람의 필수 스펙처럼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나는 단지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사랑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자가 좋았다. 초등학생 땐 친구들이 놀자고 찾아와 벨을 눌러도 그대로 돌려보내며 다락방에 숨어 들어가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교과서를 배부받으면 국어책부터 읽기 바빴고 한참 공부하기 싫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국어 교재만은 쌓아두고 풀어댔다. 남들은 어렵다는 문법 수업도 너무 재미있었고,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거나 시를 썼다. 고등학교엔 동아리 활동으로 방송부에 있었는데, 직접 쓴 점심방송 멘트를 내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일은 학창 시절 내게 주어진 특권이자 행복이었다. 그렇게 무엇이든 읽고 써대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인터넷에 글을 썼다.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에 연재를 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일도 좋았다.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쓰고 싶은 글을 쓸 시간은 거의 없어졌지만, 글 쓰기를 좋아하는 덕분에 업무 메일을 쓰거나 보고서,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들도 즐기며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의 글들이 사회에서 모든 이에게 사랑받기만 할 수는 없었지만.


갈수록 사람들은 긴 글은 읽기 싫어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자극적인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사람들은 원한다. 짧고 명료하게, 두괄식으로 핵심만 간단히, 근데 난 참 그게 참 별로다. 그건 너무 섬세하지 않다. 

“난 네 책 절대 안 읽어”라고 말하던 그 사람은 내가 쓴 글을 보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열심히 쓴 건 알겠는데 문제는… 읽기가 싫어” 

(그 사람은 내 직속 사수였다. 지금은 막역한 인생 친구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업무를 제외한 글은 쓰지 않게 되었다. 영혼을 갈아 넣어 일을 하던 그 시기에는 하루하루가 버거웠기에 차분히 자리에 앉아 연필을 잡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 삶에 글을 쓰는 즐거움의 시간도 사라져 갔다.


마흔이 넘은 이후에야 다시 돈이 되지 않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과 브런치스토리에서 소수의 사람들만 읽는 글이지만 지금의 일상에 글쓰기가 없었다면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끝없이 자라났을 것이다. 


글벗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는 강력한 힘이 있다. 혼자서 글을 쓸 땐 그때그때 잠식당한 감정에 사무쳐 쏟아내는 맥락 없는 낙서로 가득 찬 노트들뿐이었는데, 혼자 하던 글쓰기에 루틴과 주제와 성의와 지속성이 더해지며 뒤엉킨 상념이 정리정돈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글을 읽으며 정체 모를 불안들은 어느새 차분히 답을 찾아 멈췄던 걸음을 드디어 한 걸음씩 뗄 수 있게 되었다. 


살면서 함께 글 쓰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없나 보다 포기하며 살아왔는데, 정말 다행히도 글쓰기를 주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지구에 있었다. 그게 참 놀랍고 신기했다. 


나는 요즘 나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나의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하기는 할까 위축되었지만 글쓰기 모임에서 끌어주는 덕분에 멈추지 않고 꾸역꾸역 하나씩 완성해가고 있다. 


얼마 전 심리상담에서 내가 ‘사회적 불편감’이 거의 100%에 가까운 수치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타인이 너무 불편했다. 같이 사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몇 달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일도 많았다. 어쩌다 의무감에 만남을 가지더라도 긴장감에 짓눌려 며칠이고 방안에 드러누워 후유증을 앓았다. 


살면서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친한 것과 별개로 나는 늘 타인과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모두들 좋아하는 것들이 난 별로였고, 남들은 신경 쓰지 않는 일들이 내게는 너무 중요했다. 그런 세월이 길어질수록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사람은 존재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도 읽어주지 않을 나의 이야기를 외롭게 적어 내려갈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불쑥 둘째 아이 친구의 엄마가 티타임을 갖자는 연락을 해왔다. 만나서 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르느라 또 긴장감이 가득 차올랐지만, 언제까지 타인에게서 도망치며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만남에 응했다. 그 엄마도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살다가 4년 정도 일을 쉬고 작년에 다시 어렵게 복직을 결정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결국 다시 휴직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지난 몇 년 간의 나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 물론 그 엄마도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아온 삶과 가졌던 고민이 사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는 일들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그런 엄마들이 많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 하며 잘 살아왔던 엄마들. 젊고 예쁘고 똑똑하고 착한 엄마들. 그러다 지금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내어 놓고 살아가고 있는 엄마들. 다시 복직을 시도하거나, 파트타임을 뛰거나, 새로운 공부와 직업에 도전하기도 한다. 


이 지구에 혼자인 것처럼 굴었는데, 생각해 보면 나와 똑같은 상황과 경험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 주변에 천지다. 요즘 내가 쓰는 글들이 나와 그들에게 따뜻한 토닥임이 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는 답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끝없이 답을 찾아가는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멈춰졌던 내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하는 글쓰기가 나에겐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헛수고를 부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