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나는 우울증이다.
그저 울적한 기분과 우울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우울증은 감기에 걸리듯이 걸리는 마음의 병이라는데, 지금 나의 마음이 힘든 이유가 상황 탓인지, 병 때문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매일 밤 방구석에 혼자 틀어 박혀 숨죽여 펑펑 울어대는 게 정상은 아님이 분명한데, 생각해 보면 내가 봐도 참 힘들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아볼까 싶다가도 다음 날이면 또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내느라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은 잊고 살았다. 그렇게 마음의 병을 모른 척 한 채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내 마음이 고장 났다고 처음 확신했던 날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은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만나면 비타민 같은 존재가 되어 주는 절친을 만나 점심을 먹던 날이었다. 그의 앞에서는 어떤 날 것의 모습을 보여줘도 아무렇지 않은 마음 편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와의 식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외면적으로는 다를 게 전혀 없는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를 마주 보고 말 한마디 꺼내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대답을 해야 자연스러울지를 생각하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앞뒤가 맞지 않은 소리만 해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 과거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그러다 하루는 정신과를 찾았다. 낯선 여의사를 만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이야기해야 할지 조차 피곤했다. 최대한 설명한다한들 저 사람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를 내가 왜 애써 설명해야 하는지가 짜증스럽기도 했다. 불안도가 높다는 이미 나도 알고 있다는 결과를 듣고 약을 받아 돌아와 2~3일 정도 먹다가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약 복용을 관두었었다. 그게 아마도 5~6년 전쯤의 일이다.
그 이후로 나는 마음보다 상황을 해결하려 애썼다. 결국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내 선택은 가정이었다. 힘들게 일궈온 커리어는 결국 포기했다. 포기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둘 다 잘 해내려는 욕심에 많은 일을 그르치고 이미 회사생활은 꼬일 대로 꼬여 반 패닉상태로 도망쳤다고 표현하게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덕분에 숨은 쉴 수 있게 되었다. 건강도 되찾고 아이들과의 시간도 원 없이 가지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했다.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도,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지도 않는 삶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내 마음의 힘듦이 상황 탓이었다면 난 이제 행복해졌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의 상태는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여전히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눈물이 났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지나치게 긴장되어 피하고 싶었고, 모든 일에 무기력했고 공허했다. 매일 밤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들고 집안이 고요해지면 난 다시 방구석으로 숨어 들어가 숨죽여 울었다. 많은 상황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의 모습과 달라진 점이 없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면 되고 지치면 힘을 내면 된다고 생각하던 젊은 시절의 사고방식은 지금의 내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나도 단순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 온갖 부정적 상상의 나래를 거대하게 키워 나를 잡아 먹히게 했다.
사실 그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컸다. 만약 내가 지금 죽게 된다면 남은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길까에 대해서도 상상했다. 어느 날 최대한으로 증폭된 우울에 잡아 먹혀 결국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버린다면 아마도 어떤 방법과 모습이겠지라는 그림까지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절대 그런 생각은 단지 상상에만 머무는 나의 아픈 마음일 뿐이라는 것 또한 확신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내가 우주인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둘이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도 그 아이들에게 지옥을 선물할 수는 없으니까. 매일 밤 마음속 악마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더라도 다음 날 아침이면 밝고 따뜻한 미소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아들, 잘 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