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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hdcafe Nov 14. 2023

27: 더불어 사는 세상 the better world

제목: 안전이 최고야&학교가 싫다&제한속도&선생님한테 혼났다

<초1adhd일기 2022년 7월7일_안전이 최고야>

튜브 타고 물놀이 하니까 좋고
물놀이 하니까 재미있고
안전해서 좋고 좋아 좋아
안전이 최고야 하하하하
지리산국립공원 근처 수영하러 가자
<초1adhd일기 2022년 7월8일_학교가 싫다>

이 학교가 싫으면 새 동네로 가면 된다
그럴 때는
대청호수로 61번길로 갈거다
다니는 학교가 싫으면
그럴 때는
학교 없는 대전동구 비룡동으로 갈거다
아니면 추부초등학교로 갈거다
<초1adhd일기 2022년 7월10일_제한속도>

재한속도 360킬로미터 구간입니다
재한속도 180킬로미터 구간입니다
재한속도 90킬로미터 구간입니다
재한속도 45킬로미터 구간입니다
재한속도 60킬로미터 구간입니다
재한속도 120킬로미터 구간합니다
<초1adhd일기 2022년 7월12일_선생님한테 혼났다>

선생님한테 완전 박수
치듯이 혼났다
왜 그런거냐면
놀이의자에
앉아가주고 그렇다

한 가족의 15년간의 ADHD 투병기를 기록하고 있는 <adhd 너를 사랑해(5세~13세)>에 이어서 최근에 <엄마 너를 사랑해(14세~19세)>라는 두 번째 책을 출간한, 저자는 그녀의 글쓰기의 이유를 밝힌다.

p. 48-49 그런데 무슨 고집인지 나는 주변에서 만류하면 할수록 더욱더 글쓰기에 매달렸다. 나도 승민처럼 힘든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입장과 선생님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다른 아이들과 그들 부모의 입장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약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우리나라 교육체계의 불합리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의 공교육은 미봉책의 대안만 제사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다수가 아닌 소수이기 때문에 경제적 또는 사회 구조적인 이유로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가슴에 불만을 가득 품은 채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함께 하기에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이유로 당신들이 밀어내고 외면했던 그 아이도 결국엔 당신 주변에 섞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이기심이 나중에 가서는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내 아이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타인의 불행을 보지 못한다면, 그들이 가진 분노가 당신의 행복을 갉아먹는 암 덩어리가 되어 되돌아올 수 있다.
나는 나와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adhd와 같은 문제를 가진 아이들을 돕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모두 함께 찾아보고 다시 한번 고민하길 바랐다. 남들은 내 글쓰기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거라고 말했지만, 글은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 책은 adhd를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좋은 선물이다. 그녀는 부모들을 모아  매달 한 번씩 자조모임을 했다. 그 자조모임을 기반으로 대한 adhd협의를 창설하고 첫 대표였고 지금은 다음 대표에게 바통을 넘긴 상태이다. 그의 가족사가 남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 같고 내 이웃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다.  


우리 아이들 열명 중 한 두 명 정도라는데 왜 소수의 문제인가 너무 많은 아이에게 학교 시스템은 버티기 어려운 곳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터 같은 사회로 나가기 전부터 날개가 잘리는 느낌이다. 담임을 맡은 반에 정서적 어려움으로 수업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가 운동장을 배회하는 학생을 둔 중학교 선생님이 내 이웃이다. 학폭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선생님도 내 이웃이다. 초등학교 교실에 어려움이 있는 서너명의 아이로 인해 정신과 병원에서 약을 타먹고 있는 두 아이를 키우는 선생님도 내 지인이다. 선생님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학교, 학생들을 밖으로 내모는 학교는 우리가 꿈꾸는 학교는 아니다. 교육에 비전을 가지고 강단에 섰을 많은 선생님이 있다. 어린 꽃봉오리가 피어보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고 말라죽어가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에 심폐 소생술을 해서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선생님과 학부모는 협력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를 위한 상담전문가, 학교사회복지사 등의 배치가 필요하다. 독서동아리를 하다 보면, 내 아이의 문제를 교회에 아름아름 오픈하다 보면 "제 친척 중에도 있어요." "사실은 우리 아이가 그래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가족, 내 친지, 내 이웃의 이야기이다.


학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adhd에 대한 정보가 일반화되고, 매스컴에 다루듯이 시청률이 나와야 해서 그랬을까? 금쪽이의 부정적인 면에 치중하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 돕고 이 세상에 상생하할까를 모색하면 좋겠다. 이 증상이 개인의 장애가 아니라 그것이 장애가 되게 만드는 사회적 장해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나 adhd야."라고 말하는 너무 흔한 일이라서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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