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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hdcafe Oct 21. 2023

09: 그래, 우리 함께 힐링여행을 떠나자!

제목: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데 같이 가요 & 방학에 부산통영 여행가!

<초1adhd일기 2022년 5월 27일_엄마는 내가 좋아하는데 같이 가요>

나는 용돈이 깎였다 컴퓨터사려면 용돈을 백만원 모아야된다
컴퓨터는 백만원짜리도 있고 이백만원짜리도 있고 천만원짜리도 있다
나중에 내가 컴퓨터로 사서 나중에 나는 여행 갈거다

올해 6월2일날부터 31일까지 자고 올 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21날만 원래 자던 집에서 잘것이다
바다도 볼거다 나는 싫어하는데 안갈거다
내가 가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데 같이 가요
내가 펜션 하나 예약했으니까
<초1adhd일기 2022년 5월 31일_방학에 부산통영 여행가!>

나는 나중에 8월달에 여행갈 것이다
거제통영으로 갈 것이다
거기서 나는 203호에서 잘 것이다
펜션 하나 예약했다
지난번에 부산 호텔갔을 때 펜션 안가가주고 울었다

일상에 함몰되지 않게 가끔씩 콧바람을 쐬고 힐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곧 결혼 10주년이다. 엄마는 000이라는 이름을 잊고 00이 엄마로 불리었던 시간들이었다. 그 또한 유의미하다. 나의 경험이 쌓여 나라는 존재의 일부가 형성된 고로. 때론 의미 없고 개고생 같은 경험들도 그것을 '겪음'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을 해석함을 통해서 이미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고 새로운 내가 된다. 시냇물이 흘러가는데 한 번도 같은 곳에 같은 물이 흐르지는 않으니, 지난 물이 흘러가면 또 새로운 물이 흘러온다. 내가 말하고도 말이 어렵다. 다만 그 모든 지난한 경험들이 나의 피와 살이 된 듯하다.


두 아들이 학교 간 사이, 이 시간이 나를 돌아보고 내적으로 영글게 하는 시간들이다. 너희들에게 맞춰왔던 초점이 이동해서 나를 향하기도 하고 내 인생을 돌아보고 새방향을 정해 보기도 하고 말이다. 나를 나로 돌아가게 하는 시간들이다. 이제 나는 나로서의 항해를 할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의미도 다시금 떠올리며 나의 신앙,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나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때로는 수동 그라인더에 커피를 갈아 무선 주전자에 물을 데피고 베이지색 필터에 물을 부으며 그윽한 향기와 쓴맛을 음미하기도 한다. 오늘처럼 그마저도 귀찮은 날에는 집 앞 편의점에서 카페라테 하나를 사서 빨대로 쪽쪽 빨기도 한다. 이 모든 시간이 마냥 감사하고 행복하다. 너의 학교에서의 일이야, 차라리 안보는 것이 속 편하다. 남이라면 관대할 수 있는 것들도, 나는 엄마라서 불안과 마음 조임이 있으니까.


11월 초에 학교 축제가 있다. 나는 그날도 내려놓음을 배우며, 네가 설사 10살인데 7살처럼 행동하거나, 또래보다 30% 부족해 보일지라도 네가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감사할 것이다. 네가 토론이나 발표가 아니라도 그저 말을 할 수 있고 자유로이 의사표현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네가 멋진 독후감이나 동시가 아니더라도 읽고 생각하고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


엄마가 어제 네 학습지 가르칠 때, 화낸 것은 사실 네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저녁마다 갑상선 때문에 기력이 달리기 때문이란다. 이 변명 믿어줄래? 학습지를 접을 때가 왔나 보다. 남편이 이번 주만 하고 그만두자고 하고 나도 좀 더 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그것이 진정한 너로, 진정한 나로 살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또한 그것이 우리 서로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엄마는 방통대 <여성교육론> 수업과제물로 인생곡선을 그리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내게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 엄마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후가 나뉘는데, 그처럼 큰 또 하나의 변화가 너를 만나기 전후라고 생각된다. 그 두 가지 사건이 나의 못난 자아를 드러내고, 내 바닥이 보이게 만들었다. 혼자일 때보다 너랑 함께 할 때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단다. 엄마는 가을에 물들듯 너에게 익숙해진다. 이 한 해도 저물어 가는구나. 한 해 동안 힘들었지? 그래, 이제 잠시 안식을 누리자. 아들아! 이 가을날, 너랑 같이라면 어디든, 바다도 좋고 산도 좋고 우리 함께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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