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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Jul 02. 2023

엄마, 비, 그리고 인생

비에 대한 기억, 그리고 짧은 끄적임들


라이킷 유도를 위한 귀여움 투척


빗소리 

빗소리가 들리면 아이들 등교, 등원부터 걱정하는 엄마가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옷에 물이 튈 세라 조심조심 출근하던 젊은 날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산 따윈 집어던지고 악으로 깡으로 뚫고 나가는 엄마가 되었다. 우비 장착하고, 양손에 한 명씩. 비와의 전투가 시작된다. 무사히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땀인지 비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지고, 나는 그대로 쓰러진다.


'아, 오늘도 고생했다' 장마가 시작되면 한숨이 길어지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빗소리는 요란하게 때론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비 오는 날의 풍경

비가 내리면 장화를 신고 신나게 물웅덩이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크 바지에 다 튀잖아~!" 엄마의 목소리는 빗소리와 함께 흩어져 버린다.


그래 지금 신나게 뛰려무나. 언젠가는 비가 오는 날 꼼짝도 하기 싫어지는 나이가 될 테니. 이 순간의 흙 섞인 빗물냄새, 웃음꽃핀 형제의 얼굴, 잔소리하는 엄마의 목소리 잘 기억해 두렴. 언젠가 외로워진 너에게 촉촉한 위로가 되어 줄 테니.




비가 오면 하고 싶은 일

남편에게 아이들 등교, 등원 맡기고 집에서 여유롭게 차 한잔 마시기. 내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다. 비 많이 오는 날 아이들 손잡고 힘들게 걷지 않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가 억수로 많이 오는 날엔  남편이 출장을 간다. 


내일 아들의 생일인데, 비가 하루종일 온단다. 내일은 생일선물로 아빠가 등 하교 좀 시켜줬으면. 물론 비가 오는 날 외에 더운 날도 추운 날도 아무것도 아닌 날도 남편이 데려다주면 좋겠다.




엄마와 비

오늘은 첫째의 생일이다. 축하인지 위로인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고 있다. 아이는 새찬 빗소리에 걱정이 되었는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비에 옷이 젖는 게 싫다는 아이.


다행히 아빠가 등교를 도와줄 수 있는 날이라 엄마도 한시름 놓았다. 어르고 달래어 학교에 보낸 후 조용히 글을 써본다. 내 삶의 비는 언제쯤 그치는 것일까 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시작된 비는 나를 조금씩 적시더니 어느새 홍수가 되어 넘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게 나를 이리저리 쓸고 갔다.


그 비는 우울이었다.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와도 내 몸에선  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르지 않았다. 영원히 우기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쏟아지는 비를 막아보려 온 힘을 다했지만. 결국 댐이 무너지듯 내 삶은 무너졌다.


내가 무너지자 아이들도 넘어져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고 싶었지만 나를 채우고 있던 감정의 족쇄는 나를 더 가라앉게 할 뿐이었다.  


오히려 내 손을 잡고 나를 건져주려 하는 아이들까지 빠지게 할 수는 없었다.  SOS. 결국 세상에 구조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까지 다 잠기고 나서야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제발 비 좀 그치게 해 주세요.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지 1년 반. 나는 지금 무지개를 기다린다. 비가 내리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뜬다는 사실을 안다. 머리로만 아는 건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끄덕인다. 그래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뜰 거야.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도, 세차게 쏟아붓고 사라지는 소나기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장마까지 다 겪어보고 나니 알겠더라. 비가 내리는 것을 괴로워만 할 것인지, 그냥 덤덤하게 '비가 오는구나'하며 피할 곳을 찾을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란 걸.


이젠 우울이 와도 괴롭지 않다. '왔구나, 난 괜찮아. 잠시 쉬었다 가'라고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경험이라는 우산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까.




그대는 내 머리 위에 우산

그대는 내 머리 위에 우산

어깨 위에 차가운 비 내리는 밤

내 곁에 그대가 습관이 돼버린 나

나 그대 없이는 안 돼요


내가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을 때 묵묵히 내 옆에 있어준 사람이 있다. 나의 남편. 매일 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라고 구박하고, 서운하다, 힘들다 울고 소리쳐도 폭우처럼 쏟아지는 내 마음의 비를 같이 맞아준 남편.


그대도 남편이 처음이어서,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내는 처음이어서 많이 힘들었겠소. 내 우울의 비를 막아줄 우산 하나 없이 그대도 많이 젖었을 텐데, 묵묵히 곁을 지켜주어서 고맙소.


이제 내가 우산 하나 장만했으니 같이 쓰고 갑시다. 앞으로도 비는 우리를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한 우산 속에 들어와 있으니 참 따뜻하구려. 이제 아이들이 혼자 우산을 쓰고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손 꼭 잡고 걸어 봅시다. 무지개를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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