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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Jun 23. 2023

눈앞에서 아이가 차에 치일 뻔했습니다. ADHD와 안전

교통안전 교육. 만 번을 말해도 부족합니다.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손이 떨린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남 일 같기만 했던 교통사고.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뻔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아이는 무사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아이들의 생명이 위험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그 아이들도 내 아이처럼 천운으로 다치지 않길 바라며 글을 써본다.






2023년 5월의 끝자락. 아이들의 체육관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어찌나 신나게 놀았는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한번 쓰윽 쓸어주고 오른손엔 작은 녀석, 왼손엔 큰 녀석 손을 잡고 신나게 걸어가고 있었다.


우린 30초 남짓 걷다가 횡단보도에 도착했고, 그때 마침 체육관 차가 우리 앞으로 지나갔다. 관장님을 보자 신난 아이들이 만세를 하며 인사를 하는 통에 잡고 있던 손을 놓쳤다.


나는 체육관 차가 지나가자마자 둘째의 손을 잡았고 첫째의 손도 잡으려 했지만, 이미 첫째는 횡단보도로 튀어나가고 없었다.




그렇다.  우리가 건너려고 했던 횡단보도엔 신호등이 없었다.







빵-!!!!!!





정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반응속도가 이렇게 형편없을 줄이야. 차가 아이 앞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도 몸이 얼어버린 듯 아이에게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는 경적소리에 놀라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고, 달려오던 차도 죽을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았다.



한 뼘.



딱 한 뼘의 간격을 두고 차는 멈추었다.



내가 그 순 간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달려가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는 것.


시간이 멈춘 듯했다. 몇 분을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한동안 멈춰있던 차는 우리를 피해 지나갔다. 운전자도 차 안에서 끌어안고 있는 우리를 보며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으리라.


이 전에도 골목 모퉁이에서 나오는 차와 부딪힐 뻔한 적이 있었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속도가 느렸으니까. 그럴 때마다 엄마의 손을 놓고 제멋대로 뛰어간 아이를 혼내고, 아이 탓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큰 사고가 날 뻔 하자 엄마의 본능은 새끼를 지키는 것에 온 힘을 쏟았다. 엄마가 손을 놓쳐서 미안해, 달려와 막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런 무서운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


신호등이 없는 위험한 횡단보도에서 잘 살피지 않고 충동적으로 뛰어나간 아이에게도, 매번 불만이었던, 횡단보도에 서있는 보행자를 가리는 불법주차 차량들에게도,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운전자에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누구의 탓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만약 사고가 났더라면 나는 나를 가장 원망했으리라.


"다행이야, 다치치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주문처럼 되뇌는 나의 말에 아이도 진정을 한 듯 내 품에서 떨어져 나와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많이 놀랐지? 괜찮아?"라고 묻자 끄덕이는 아이에게 나는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고마워 다치지 않아 줘서.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왜 주변을 살피지 않았냐고, 왜 엄마 손을 잡지 않고 건넜냐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한 번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깨우쳤으리라. 목숨을 건 경험이었으니 나의 백 마디 말보다 평생 기억에 남으리라.


몇 분이었지만 온 우주가 멈춘 것 같았던 그 순간 이방인처럼 방치되어 있던 둘째를 바라보았다. 둘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둘째도 보고 느낀 것이 많았겠지?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를 옮겼다.


"이제 집에 가자"


양손에 녀석들의 손을 잡고 힘차게 걸었다. 나는 꾸지람 대신 오버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이건 기적이야! 차가 네 앞에서 딱 멈추다니!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는 거야. 정말 다행이야 그렇지?"


아이는 내 말을 듣고 흥분해서 한마디 덧 붙였다.


"엄마! 내가 피했어! 차가 빵! 했을 때 내가 이렇게 뒤로 피했어!!"


"맞아! 내 새끼 진짜 잘했어! 운동신경 최고야! 잘 피해 줘서 고마워! 네가 잘 피했기 때문에 다치지 않은 거야. 정말 대단해!"


우리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둘째가 거들었다.


"엄마 저 차는 초보운전인가 봐~!"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본 둘째의 머릿속엔 이런 귀여운 생각이 들어있었다. 둘째도 많이 놀랐을 텐데 자기 나름대로 진정하려 상황을 정리한 싶었다.


첫째는 둘째가 그렇게 말하자 옳다구나 하고 받아쳤다.


"정말 초보운전인가 봐. 운전을 잘 못해서 그런가 봐~!"


"그래 초보운전인가 보다. 우리가 이해해 주자. 그리고 다음부턴 엄마 손 꼭 잡고 건너기 알겠지?"


"네!"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새까맣게 잊은 사람들처럼 웃으며 대화를 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잘 피했는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첫째 덕분에 나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물 흐르듯이 넘어갔나?'싶기도 하다. 누군가는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혼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를 안다. 교통안전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순간 충동적으로 몸이 움직였다는 것을. 항상 차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잘 알고 있지만 그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너무나 강렬한 경험이었기에 다음부턴 조심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날 한 번 더 깨달았다. ADHD아이에게 안전교육이 얼마나 중요 한지를, 그리고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하고 교육을 해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방송에서 보았던 ADHD아이들의 모습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들이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내 아이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ADHD성향을 가진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아이들이니까.







백문이 불여일견.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되지 않던 것들이 한 번의 경험으로 해결되었다. 사고가 날 뻔 한 이후로 아이는 180도 달라졌다. 동생이 골목에서 뛰면 달려가서 동생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내 손을 꼭 잡고 좌우를 살핀다. 횡단보도를 다 건 널 때까지 손을 번쩍 들고 있는다. 더 이상 엄마 손을 놓고 달려가지 않는다.


아이가 경각심을 가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극도로 조심하는 아이의 모습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것일까, 길을 걸을 때마다 마음이 불안한 것일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반성하는 것과,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 또한 아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아이의 손을 놓쳐 사고가 날 뻔했지만 자책하지 않는다.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날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것을. 그날 이후로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을 말이다.


아이는 나의 꾸지람 없이도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변화했다. 그것이 불안일지라도. 앞으로 아이가 안전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ADHD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선 약물치료를 꼭 병행해 주시라고. 부작용 걱정이든, 세상의 편견이든, 무엇이든 맞서 싸우시라고. 이겨내시라고. 내 새끼의 안전보단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이다.


 ADHD성향을 가진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위험한 상황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며 사고를 당할 확률도 현저하게 높다. 부주의함과 충동성이 높은 아이들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ADHD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할 때는 안전과 자존감에 문제가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우리 아이도 약물 치료를 하기 전엔 정말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멍하니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을 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런일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아이가 ADHD진단을 받기 직전인 2022년 6월.


나와 아이는 놀이센터 수업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가고 있었다. 두 자리인 좌석이 없어 아이와 앞, 뒤로 앉았다.


한참 달리다 시댁 가는 길이 보이길래 "여기 고모집 가는 길이다 그렇지?"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버스는 바정류장에 멈추었고 뒷문을 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열린 뒷문을 바라보았다.그런데 내 시야에 우리 아이의 뒷모습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아이는 버스의 뒷문이 열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내려버린 것이다! 아버지... 놀란 나는 크게 소리치며 쫓아가 아이를 잡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일이 나진 않았지만 요동치는 심장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기가 막힌 것은 나보다 아이가 더 놀랐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왜 내렸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리자'라고 말한 줄 알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도대체 왜?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많이 놀랐기에 다그치려 했던 마음을 애써 누르고 "괜찮아. 안 다쳐서 다행이야. 다음부터 엄마 이야기 잘 듣자"하며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이후 이 일화는 고스란히 의사 선생님께 전해졌고, 아이는 ADHD진단을 받았다.


만 6세, 약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첫째 아이는 만 6세 생일이 지난 다음날부터 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글을 쓰는 지금부터 1주일 뒤면 만7세 생일을 맞이한다.


1년이 지난것이다. 1년 전 치료를 시작했을 때 착잡하고 속상했마음과 지금의 마음을 비교해 보자면, 난 행복하다. 아이가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 그거면 되었다.


나도 ADHD를 가지고 있고, 같은 약을 먹는 엄마이기에 부작용에 대해 늘 걱정하고, 아이가 약을 평생 먹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짓눌리고, 아이 스스로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되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며 미안하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내 아이의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다.  지키고 봐야지. 일단 건강하게 살아있어야지 다음도 있는 것이다.







아이는 자동차 사고가 날 뻔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내원을 하였고, 상담하에 약 용량을 올렸다. 평소 아이를 관찰한 것을 토대로 증량을 결정한 것이지만, 이번일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약을 받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저 아이가 안전하길 바랄 뿐이다.



ADHD아이에게 안전 교육은 평생교육이어야 한다. 어렸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백번을 말해도 천 번을 말해도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 정도면 되겠지는 없다. 그저 매일 최선을 다해 아이를 지켜야 한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상황마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가르치자.


평범한 일상,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에도 감각을 일깨워 훈련시키자. 너무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괜찮다. 자기도 모르게 횡단보도로 튀어 나가는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고 다니는 것을 몸에 익혀야 한다. 무의식 속에 깊이 새겨 넣어야 한다. 그래야 엄마도 숨통 트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엄마들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예민해져야 하는 것이 조금 힘들겠지만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외쳐보자.



안전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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