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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Mar 03. 2019

3년 전 말을 알아들은 날

20181108

3년 전, 전통주 담그기에 도전해보고 나는 알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직접 만들지 않고 사 먹게 되는지를... 술뿐 아니라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전통음식으로 불리는 것들과 2019년의 나 사이에는 쉽게 친해지기 힘든 어색함이 있는 게 아닐까?


술에 비해 고추장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고추장을 담글 때 쓰는 도구나 재료들은 일상적이지 않다. 엿기름은 자주 사게 되는 재료가 아니고, 면포 또한 만두나 송편 찔 때 외엔, 아니 이마저도 귀찮아서 거의 쓰지 않게 되는 도구이다.


할머니가 처음 고추장 담그기 교육을 시작할 땐 재료의 분량을 적지 않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에 많은 양으로 도전했다가 여기저기서 망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때부터 분량을 적기 시작했다고 하신다. 적힌 레시피에 있는 양도 1/4로 나누어 시도해 보라고 당부하신다. 

교육을 하기 위해서 레시피를 만들기는 했지만, 하고 싶은 얘기나 표현이 레시피에 다 담기지는 않으신 것인지 레시피를 읽어주신 뒤에도 추가 설명이 레시피의 2~3배 분량으로 이어졌다. 할머니의 고추장 언어에는 문맹이나 다름없는 수강생들은 웅성 웅성하다가 다시 질문을 하곤 했다.

 

예를 들면, 레시피 7번에 소금을 넣는 부분이 있는데, 

Q :어떤 소금을 쓰나요? 김장용 소금이면 될까요?

A : 저희는 10년 묵은 소금을 씁니다. 100포대 사다 놨어요.

Q: 그럼 저흰 어떻게…??

A : 마트에서 2~3년 된 소금 사다가 묵히세요. 10년 금방 갑니다.^^

Q : 저, 간수 뺀 걸로 써야 해요?(이 분은 유경험자인 듯하다.)

A: 그럼 더 좋지요. 깨진 항아리나 냄비 있으면 자루 채 두세요. 간수가 빠져나갑니다.

옆에서 참관 중이시던(교육장소가 경로당 겸 마을회관임) 어르신들 중 한 분이,

“그래서 소금은 좋은 독에 두는 거 아니여~”

“염분이 있어서 다 갈라져~”

한 마디씩 거드신다.

강의 도우미인 고추장 할머니의 며느리와 수강생들, 어르신들까지 합세한 소금 논쟁은 고추장 할머니의 한 마디로 정리되었는데, 

“쥐어봤을 때 손에 달라붙지 않는 거 사믄 돼요.”

이런 식이었다.


고추장 할머니의 언어에는 할머니의 살아온 시간과 장 담그기의 경험, 실수, 성공, 어느 해의 날씨, 온도, 바람, 햇빛, 장 담그던 날 할머니의 기분, 그해 고추의 매운 정도, 보리를 삶던 불의 세기 등이 들어있는 것 같다. 

분명 같은 한국말이고 아는 단어들이지만 내게 전달되는 뜻은 표면적인 뜻뿐이고, 그 말들의 속뜻은 내가 고추장을 직접 담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추신 : 레시피의 순서 6번에 보면 「다음 날에는 잠깐 환기를 시켜 상태를 확인하고 조금 두꺼운 담요를 덮어 5일가량 두면 진이 죽죽 나면 뜬다.」라는 말이 있다. 환기를 시키라는 표현은 내가 3년 전 고추장 할머니께 배운 대로 술을 담그다가 술을 마치게 된 주범이기도 하다. 

오늘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찐 보리가 담긴 스테인리스 그릇이 따뜻한지- 따뜻하다는 건 잘 떠지고 있다는 뜻임-손으로 만져보아 온도를 확인하라는 의미였다. 

전통음식을 배울 때 주의사항 하나! 아는 단어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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