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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Mar 03. 2019

다른 엄마의 손맛을 배우는 날

20181117 

지난번 동네 도서관 행사에서 고추장 체험과 두부 체험 두 가지를 신청했었는데, 지난번에 고추장을 했었고, 오늘은 두부를 하는 날이다. 


명인의 며느리인 강연자는 한말이나 되는 메주콩을 어제 종일 불려둔 뒤 미리 콩물을 걸러 놓았다고 했고, 체험자들은 걸러 놓은 콩물을 커다란 솥에 끓이는 과정부터 볼 수 있었다.

끓고 한 김이 나간 콩물은 그대로 두면 두유로 먹을 수 있고, 지금은 여기에 간수를 넣고 나무주걱으로 천천히, 슬로 모션처럼 보일 정도로 아주 천천히 저어서 순두부를 만든다. 시간이 지나 자조금씩 몽글몽글한 덩어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있던 체험자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고, 강의 내내 플라스틱 자동차로 테이블을 두들겨 대면서 지루해하던 몇몇 아이들도 조용히 명인의 며느리가 만들어내는 마술을 지켜보았다. 다시 한참을 더 저어주었더니 투명한 물과 좀 더 커진 하얀 두부 덩어리들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순두부다! 


네모난 틀에 넣어 굳히는 과정까지 보고 싶었지만 체험은 여기까지이고, 대신 지금 만든 순두부와 미리 만들어 놓은 네모난 두부를 명인이 담근 김장김치와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이건 두부 체험이 아니라 두부 관찰이라고 해야 하나? 아쉽게도 먹는 것 말고는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먹으니 그 맛은 특별하다. 


내 옆에 앉은 두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시어머니가 장류를 잘 담그시는데 배우고 싶어도 식당을 운영하시는 시어머니의 어마어마한 스케일(김장의 경우 1000포기)을 감당 못할 것 같아서 섣불리 배우겠다는 말을 못 하고 있다면서, 결국 여기로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친정엄마는 아파트에 사시면서 젊어서는 담그시던 고추장, 된장과 다 멀어지셨다고… 


우리 엄마는 평생의 절반을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지만 아파트에 사시는 동안에도 한동안은 장독을 갖고 다니시면서까지 고추장, 된장을 담그셨다. 그땐 내가 관심이 없어서 배우질 않았는데, 이젠 내가 배우고 싶어도 엄마가 하질 않으시니 배울 수가 없다. 엄마도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사서 먹거나 누군가 나눠주는 것을 드신다. 

김치명인, 고추장 장인, 요리 강사라는 이름으로 친정엄마를 대신해주는 분들이 없었다면, 검색만 하면 쏟아지는 평범한 고수들의 레시피들이 없었다면, 고추장, 된장, 간장, 술, 손두부 등은 빗살무늬 토기처럼 박물관의 음식 모형으로 남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이 내 집 담장을 넘어 강연장의 아이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일 때, 그 집안 고유의 솜씨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국가적인 정책 혹은 지원이 있었더라면, 혹은 개인적인 노력들이 있었더라면 지금 보다 잘 보존되지 않았을까? 몇몇 장인 혹은 강사들의 솜씨가 아닌 가구 수만큼의 장맛이 존재하는 나라, 이런 것들이 진짜 인류문화유산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 솜씨가 꼭 엄마에게서 딸에게로 갈 필요는 없다. 손맛을 지닌 사람이 손맛이 없는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이웃에게, 친구에게 전수해주면 된다. 

잘 배우고 연습해서 내 아들에게 전수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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