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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Mar 03. 2019

또 아닌 날

20181124 

지난번 보리 반죽은 고춧가루와 섞여보지도 못한 채 음식쓰레기가 되었다. 

혹시 되살릴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고추장 할머니의 며느리와 1차 통화를 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얘기해 주긴 했지만 어떤 결론도 내리진 않고는 '혹시 모르니 어머니와 한번 통화를 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고추장 할머니와 다시 통화를 했지만, 결국 '그것은 못 먹는다'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이유를 얘기해 주시진 않았다. 아니, 얘기해 주시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과정은 내가 진행했으므로, 전화기 너머에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의 방법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뿐... 

이번엔 엿기름물을 레시피에 적힌 양보다 거의 두배 많이 준비해서 보릿가루와 섞었고, 삶는 시간도 1시간 더 늘렸다. 설 익으면 뜨지 않는다는 말에 과하게...

대신 한 김 뺀 후 스테인리스 그릇에 옮기는 과정에서는 지난번처럼 너무 오래 식히지 않았다.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살짝 김을 뺐다. '살짝'의 기준은 만드는 사람의 감각인 것 같다. 

오늘이 전기장판 위에 둔 지 3일째인데 만약에 별 탈이 없다면 며칠 뒤 고춧가루, 메줏가루, 소금, 엿기름물과 섞여서 비로소 고추장이 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2019년도 아이의 떡볶이와 라볶이, 닭볶음탕, 제육볶음 등을 책임질 우리 집 주요 양념이 되어줄 것이다.  

이 반죽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건지, 전기장판의 따뜻함 때문인지 내가 안 볼 때면 랑지가 수시로 가서 보리 반죽 그릇 옆에 앉아 있곤 한다. 솔직히 냄새는 별로다. 

그런데 지금 보니 어제까지는 없던 곰팡이가 생겼다. 교육받을 때 곰팡이 얘기는 없었는데 하얀색이면 이것도 어제 일기에 쓴 효모, 골마지인 건가? 하얀 곳도 있고 푸르스름 한 곳도 있지만, 골마지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이건 또 뭐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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