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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Mar 03. 2019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날

20181121 

20대 때 이미 김치를 담을 줄 아는 친구가 있었다. 심지어 맛도 나쁘지 않았다. 친구가 차려준 저녁을 먹으면서 '진짜 네가 담은 거야?'하고 물어봤던 것도 같다.  25,6살쯤 되었을 때인데, 맛을 떠나 어린 나이에 김치를 담을 줄 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악기나 운동에 능숙하다고 했다면 듣고 잊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김치여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날의 저녁식사 이후 김치는 물론,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의 장류는 적어도 50세가 되기 전에 할 줄 알아야 하는 인생의 덕목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려서 보던 4,50세 즈음의 어른들은 이미 그런 일들을 능숙하게 해내는 어른들이었는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

그나마 김치는 몇 년 전부터 가끔씩 시도해 오고 있지만, 김장김치는 여전히 부모님이 주신 것들을 받아먹고 있으며(3년 전 나 홀로 김장에 성공했을 때도 두 분 다 김치를 주심), 된장, 고추장, 간장은 다 사다 먹고 있다. 하지만 담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줄 몰라서 사 먹는 것은 좀 서글프지 않을까? 어떻게 먹든지 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추장, 두부에 이어 오늘은 메주다. 오늘 메주 담기 강습(지난번 두부 만들기를 배운 곳과 같은 곳이다)엔 의외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다. 친정엄마가 더 이상 안 주셔서 배우러 왔다고 농담처럼 얘기하는 분도 있었고, 남자 분도 둘이나 있다. 한 분은 혼자 오신 것 같고, 한분은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와 같이... 


콩이 메주가 되는 과정은 '콩을 삶는다, 물을 뺀다, 으깬다, 모양을 잡아 말린다'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질문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메주에 낀 곰팡이는 어떤 색이 좋은 것인가,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실내에 두어야 하는가, 콩은 얼마나 오래 불려야 하는가, 한말은 몇 kg인가, 가시가 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콩 한말이면 메주가 몇 개쯤 나오는가... 


지금까지 먹은 나이로만 치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어른이었지만, 이런 일들을 시도해 보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고문서처럼 막막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희미하지만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내년 2월에는 나도 장을 담글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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