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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Apr 14. 2019

남학생을 본 날

20190311 


주르륵 쏟아지느냐 조금씩 떨어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아이의 운동화 속엔 늘 모래알이 가득하다. 몇 번은 내가 털어낸 적도 있었는데, 자꾸 내가 해 주면 운동화 속에 모래가 쌓인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모래는 신다 보면 저절로 조금씩 튕겨져 나가서 축구를 하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모래만 운동화 속에 남게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될 것 같았다. 보고 있으면 내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질 것 같지만 참고 내버려 두었다. 그냥 신기엔 괴로웠는지 가끔은 아이 스스로 모래를 비워내기도 한다. 밖이 아닌 말끔한 현관 바닥에 주르륵 쏟아놓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묻은 먼지가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빨간색 백팩, 아이는 일부러 털어내기보다는 가방을 바닥에 툭~ 하고 던져두는 것으로 가방에 묻은 먼지를 분산시켰다. 적어도 1m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것이라 바닥에 닿는 순간 가벼운 먼지들은 떨어져 나가는데, 그다음엔 내일 가져갈 책을 가방 위로 던지거나 둘 데를 정하지 못한 베개를 일단 던져 둠으로써 남아있는 먼지를 자연스럽게 분산시켰다. 물론 먼지는 방 전체에 골고루 스며들었다.

일부러 가방의 먼지를 터는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신기하게도 다음 날 등교할 때 보면 원래의 빨간색으로 돌아와 있다. 

"교복 재킷 어딨어?"

"가방에..."

아이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말한다. 

"이렇게 구겨지고 먼지 묻은 옷을 입고 싶냐?"

"응!"

아주 당연한다는 듯이 대답한다.

"냉동식품처럼 덩어리가 되어서 나오는데?"

"에이~ 누가 신경 쓴다고^^" 

아이고~ 이 엄마가 신경이 쓰입니다.  

"축구할 때 가방이고 뭐고 몽땅 운동장 바닥에 던져두지?"

"벤치에 두는데 벤치에 흙이 많네." 

먼지를 바로바로 털어내는 것도, 들어오면 바로 옷을 정리해서 두는 것도, 신발의 모래를 굳이 말끔하게 청소된 현관바닥에 털지는 않는 것도, 벤치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가방을 두거나 아예 내려놓지 않는 건 아이가 아닌 나의 방식. 

하교 이후의 절차가 내겐 공동생활의 규칙이거나 생활습관의 문제이지만, 아이는 그저 내 물건을 내 방식대로 관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고등학교 때 봤던 남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장대비가 오는 날 오는 비를 다 맞고 농구를 하다가 갑자기 비가 그치자 물을 뚝뚝 흘리면서 교실로 들어가 공부하던 아이, 운동장 아무 데나 옷이며 가방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먼지를 풀풀 날리면서 농구를 하던 아이들, 교실 바닥에 뒹굴던 점퍼를 주워서는 털지도 않은 채 입던 아이...  

내 아이도 그런 남학생 중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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