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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Apr 14. 2019

엄마의 하루를 들여다본 날

20190324 


엄마의 일기를 대필하기 시작한 지 오늘로 7일째.

둘째 날에는 오랫동안 망설이던 말을 상대에게 속 시원하게 해버리시고 난 후의 개운한 마음을 일기에 쓰셨다. 혼자서 몇 년 간 속을 끓이셨겠구나 생각하니 나도 개운해졌다. 

셋째 날은 엄마 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가득 풀어놓으셨는데, 대하드라마라도 쓰실 것처럼 끝도 없이 이어졌다. 통화 녹음을 듣고 옮겨 적는 데 1시간이나 걸렸다. 

매일 길게 통화하는 건 내게도 힘든 일이어서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엄마~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말고 그 날 있었던 일이나 생각을 정리해서 불러 줘.^^

다행히 매정하다 생각 안 하시고 정리해서 불러 주셨다.

대신 엄마의 일기는 눈에 띄게 줄었다. 두세 문장 정도로^^

일기를 안 쓰고 주무셨다길래 30분 후에 다시 걸어서 받아 적은 날도 있지만,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셔서 일기를 불러 주신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대필할 수는 없다. 노트에 적는 것은 귀찮아하시면서도 대필은 괜찮다고 하시는 거 보면 일기를 쓰는 행위에 대해서는 공감하시는 것 같다. 

'앞으로 6개월 정도는 엄마의 일기를 대필해 드리고,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밴드에 글자 입력하는 것을 가르쳐드린다' 이것이 현재 나의 생각이다. 얼마나 걸릴지, 성공할지 어떨지 알 수 없다. 하지만 6개월의 일기가 쌓인 걸 보시면 엄마도 직접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시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사진 찍는 것까지도. 그럼 그림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엄마의 허락하에 3월 21 엄마의 일기를 옮겨 본다.

「내가 너무 나태한 것 같다. 반찬도 없고 저녁에도 떡, 아침에도 떡, 낮에만 밥을 먹었다. 내일은 시장 좀 봐야겠다.」 

짧은 세 문장 속에 엄마의 하루가 들어있다. 


*사진: 아침 저녁으로 드셨다는 그 떡. 우리집 냉동실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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