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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Apr 14. 2019

11년 만인 날

20193026

대한민국 대 콜롬비아전을 보러 간다기보다는 이청용 선수의 플레이를 보러 왔다가 간다.^^

경기가 끝나고도 2시간 동안이나 일부 팬들은 경기장을 뜨지 않았다. 그중엔 나랑 아이도 있다.

국가대표팀 차량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정확히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이들 팬 중에는 교복 입은 아이들끼리 기다리는 경우도 많고, 부모와 같이 기다리는 아이도 있다. 

한 손에는 직접 쓴 편지를 쥔 채 양 손으로 보훔 유니폼을 흔들면서 아이도 차량이 빠져나오기를 기다린다. 어떤 차량에 탔을지, 걸어서 빠져나갔을지도 알 수 없지만 그냥 기다린다.

관람객들의 차인지 선수들이 탄 차인지 알 수 없는 승용차들이 계속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자리가 텅텅 빈 국가대표팀 버스까지 빠져나가도 남은 사람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혹한은 아니지만 날씨가 쌀쌀해져서 몸이 뻣뻣해진다. 

더러 자신이 기다리던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들이 이쪽저쪽으로 한꺼번에 쏠리기도 했다. 실제로 그 차 안에 기다리던 선수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야 경기장의 불이 꺼졌고, 사람들이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가서 선수들이 다 빠져나간 건지 묻고 와서는 이제 가자고 한다. 

"그래도 오늘 최고였어. 경기 끝나고 경기장 한 바퀴 돌 때 내가 유니폼 흔드는 거 보고 웃어줬어." 

맞다. 자신의 구단 유니폼을 흔드는 사람은 우리가 있던 블록에서 아이뿐이었다. 거의 다 빨간 응원복을 입은 관중들 사이에서 파란색의 보훔 유니폼은 눈에 잘 띄었을 것이다. 우리가 있던 블록을 통과하는 동안 아이를 발견하지 못할까 봐 

아이랑 내가 목소리를 합쳐서 이청용 선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직접 얘기를 나누거나 정성 들여 쓴 편지를 줄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표정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에서 11년째 좋아해 온  선수와 드디어 만났다.  

편지는 보훔 구단으로 부치기로^^(4월 8일에 보낸 아이의 편지가 4월 12일 보훔 구단에 도착했다고 우체국 문자로 알려 왔다.)


*사진 : 경기가 끝난 지 1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주차장 입구에서 여전히 선수들을 기다리는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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