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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Apr 14. 2019

내가 엄마인 듯 한 날

201903028 


아무래도 엄마가 글로 쓰지 않고 그때그때 문장을 만들어서 내게 불러주시는 것 같다.

지금까지 10개의 일기를 전화로 듣고 기록했는데, 잘 알아듣지 못한 문장을 다시 불러달라고 할 때면 엄마는 처음에 불러준 문장과 약간 다른 문장을 불러 주셨다.  

“엄마, 아까하고 다른데?”라고 말하면,

“아니야. 똑같아.”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예를 들면 ‘모처럼 점심을 먹었다’ 고 하셨다가 다시 불러주실 땐 ‘모처럼 점심을 빠가탕을 먹었다’가 되는 식이다.

“엄마, 아까는 빠가탕이 없었어.”라고 말하면,

“아니야, 있었어.”

하고 시치미를 뚝 떼신다. 

물론 종이에 써 놓으시고도 다르게 읽으셨을 수도 있고, 나의 짐작대로 그때그때 문장을 만들다 보니 미세하게 문장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빠가탕이 들어가거나 안 들어가거나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셔서 읽었다 안 읽었다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일기는 달랑 두세 문장 불러주시고는 바로 수다 모드로 들어가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일기는 애피타이저일 뿐, 하루 종일 쌓아둔 수다 욕구를 메인 요리로 내게 쏟아부으신다. 매정하지만 나는 그 수다를 다 들어드리지 않는다. 

“엄마, 이렇게 지금처럼 말로 하고 싶은 걸 글로 적어보라고. 내일은 세 문장보다 많이 써 봐.”

“… 알았다.” 


엄마가 딸인 내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법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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