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5
나는 장도 담가 봤고 두부도 만들 수 있어요, 술도 해 본 적은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건 전통 음식들을 시도해 보면서 얻는 것들 중 아주 작은 부분이다.
본질이 살아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황홀함, 배우거나 직접 해 보는 동안 이 음식이 갖고 있는 철학이 조금씩 내게 전해진다는 것이 더 큰 매력 같다.
굳이 만들어 먹지 않아도 돈만 있으면 원하는 식재료를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국내외의 식품회사에서 만들어 낸 것들에 한해서만 나에게 선택권이 있을 뿐이다.
제품으로 나오지 않으면 내가 만들어 먹기 전에는 먹을 수가 없다.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내게 있다는 건 착각일 수도 있다. 주도적으로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만들어 주는 대로 먹고 있다. 정해준 맛을 좋아하도록 길들여지는 것 같은 기분. 특정 두부, 특정 김치 맛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먹을 능력도 시간도 안 되지만, 만들 줄 몰라서 사 먹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하는 두 가지의 행태가 공존하는 삶을 위하여...
*사진: 발효식초 만들기 강좌에 갔다가 맛 본 발효식초의 사진. 식초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