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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Apr 28. 2019

장이 아니라 콩이 힘든 날

20190427

아침 8시 15분에 콩을 씻어 불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항아리에 된장과 간장을 나눠 담는 것까지 하고 나니 밤 9시가 지나있었다. 밤에 불려 두고 자면 될 것을, 귀찮아서 미룬 탓에 오늘 고생~~


콩을 불리는 6시간 동안은 식사 준비를 하고 다른 집안일을 하면서 잠시 쉬기도 했지만, 일단 콩을 삶기 시작하자 쉴 수가 없었다. 두꺼운 냄비에 콩 500g을 넣고 삶기 시작했는데(메주만 으깨서 된장을 해도 되지만 영양분과 맛을 보충해주기 위해 콩을 삶아 넣었다. ), 불에 올린 지 겨우 6분 만에 파르르 끓어 넘쳤다. 그 후로도 3시간 반을 삶는 동안 서른 번도 넘게 끓어 넘친 것 같다.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살짝 열어두었다 찬물을 부었다, 불을 줄였다 키웠다, 나중에는 식탁 의자를 가스레인지 앞에 옮겨두고 말 그대로 콩 삶는 냄비를 '지켜보았다'. 오늘 했던 과정 중에 가장 힘든 시간!!

메주 할머니의 레시피에 1kg을 4시간 동안 삶는다고 되어 있어서, 500g(레시피엔 400g인데 실수로 더 넣음)은 2시간만 삶아도 될 줄 알았다. 직접 해보니 양은 절반이어도 콩이 익는 시간은 거의 비슷했다. 3시간 반쯤 지났을 때야 손으로 만져보니 부드럽게 으깨졌다. 


콩 삶은 물이 식을 동안 항아리 속의 소금물, 아니 예비 간장을 고운 체에 밭쳐 항아리에 담았다. 여름을 무사히 보낸다면 가을에 맛있는 간장이 될 것이다.


메주 으깬 것에 한살림에서 사 온 메주가루 400g, 삶은 콩, 콩 삶은 물까지 같이 섞어주었다. 딱 지금 먹기에 좋은 짠맛이 나지만 집간장과 소금을 더 넣어준다.  '염도가 낮으면 상하고 한 번 시어진 장은 못 고치고 버려야 한다’는 메주 할머니 며느리의 충고에 따라~ 폭염을 견디고 살아남을 된장의 염도를 상상하면서 집간장과 소금을 적당히 넣어 보았다. 이건 누가 알려준다고 해도 지금 나 혼자 하는 것이므로 내 감각을 밑을 수밖에^^  된장을 조금씩 맛보면서 상상해 보았다. ‘이 정도면 폭염이 와도 시어지지 않을 거야.’ 하고~


콩을 삶는 동안은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  메주를 으깨고 콩을 으깨고 재료를 섞는 동안은 아이와 같이 했는데도 어깨와 손목이 아팠다. 항아리에 된장과 간장을 따로따로 담는 순간은 드디어 11월 메주 빚기로 시작된 장 담그기 프로젝트가 중반까지 왔구나 싶어서 기뻤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아프다.^^  

된장과 간장이 성공한다면 우리 엄마 외엔 아무도 못 줄 것 같다. 아까워서 ㅎㅎ 


*저의 장 가르기는 조숙자 명인의 레시피에 따른 것으로,  메주 반말(4kg, 세 덩이 정도), 메주가루 400g, 콩 400g, 약간의 집간장과 천일염이 필요합니다.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알려드립니다.^^ 


*사진: 항아리 색깔과 비슷해서 구별하기 힘들지만, 지난 3월 7일에 염도 18의 소금물이었던 것이 메주의 은공으로 누르스름한 빛깔의 예비간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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